| 작가회 신입회원 가입 안내 |

소박한 야생화처럼


최 복 희

 세상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꽃이 있다. 꽃은 무조건 아름다움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으니 예쁜꽃 미운꽃을 가려낸다는 것은 모순일지 모른다. 그러나 만인이 좋아하는 꽃도 있고, 꽃 모양이나 색깔이 유난히 고와서 또는 특별한 인연이 있어 좋아하는 꽃을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으리라.

그런데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꽃을 하나만 지적할 수가 없다.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 봄, 여름, 가을 3계절 동안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야생화를 모두 좋아하기 때문이다. 들녘을 거닐다가 내 시선이 머무는 곳엔 언제나 꽃이 있다. 자세히 보면 옹골차게 흙을 움켜쥐고 살아가는 풀들이 고운 빛깔의 예쁜 꽃잎을 피우고 있다. 들일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도 내 주위엔 꽃 천지여서 그것들과 조우하느라고 심심치가 않다. 곧 뽑아버려야 할 뜰에 잡초에도 꽃이 피어있으면 미안한 마음으로 한 번 눈 맞춤을 한다. 뽑히면 곧 시들어버릴 것이기에.

봄이 오면 뒷동산에 자주 오른다. 그곳에도 예쁜 꽃들이 지천이다. 나는 그 꽃들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한다. 그 중엔 아주 낮은 자세로 입맞춤하듯이 가까이 가야 제 모습을 보여주는 꽃이 있는데 “까꿍!”하고 눈 맞추면 방끗 웃는 아가의 얼굴 같아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드문드문 피어있는 각시붓꽃은 청초하고 고결해 조금 떨어져서 감상을 한다.
 
집에서 가꾸는 꽃보다 유난히 예쁜꽃을 발견하면 꺾어서 집안 화병에 꽂아놓지만 그 꽃은 곧 고개를 숙인다. 다시 뿌리 체 뽑아 화단에 옮겨 심어도 1-2년 지나면 자연히 없어져버리니 야생화는 제가 처음 뿌리내린 곳에서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며 자라야 온전히 제빛을 발하는 것 같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의연하고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야생화를 나는 좋아한다.

내가 사는 곳은 인가가 드문 한적한 곳이어서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가끔 개나리울타리 너머로 지나는 사람을 발견해도 반갑다. 장독 옆에 서 있는 앵두나무에 발갛게 앵두가 달릴 무렵이면 탐스러운 가지가 울 밖을 넘는다. 지나다가 그것을 본 사람들은 “앵두 좀 따 먹어도 돼요!” 한다. 그럼 나는 “필요한 만큼 따세요. 우리는 화초로 두고 보는데 실컷 봤으니” 하면 의아해 하며 고맙게도 내게 호감을 갖는다. 전혀 인연이 없던 사람이건만 나와 다시 만나기를 희망한다. 또 어쩌다 사회봉사활동이나 교양강좌에 나가 많은 이들과 어울리다보면 헤어질 때 앞으로 벗이 되자고 하는 이도 있다. 그날은 프러포즈를 받은 기분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월간지나 주간지상에서 나의 일상생활의 느낌을 적은 글이 실린 것을 읽고 전화로 찾아주는 이들도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잘난 곳도 없는 내게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외딴 농촌에서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소박하게 살고 있음이 아닐까. 

 세상에는 외모가 뛰어나거나 재물이 많은 사람, 학식이 많거나 재주가 있어 명성을 떨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개중에는 지나친 과욕으로 자기를 과시하며 뽐내서 멸시와 지탄을 받는 사람도 있으니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겸손해야 된다고 하는가 보다. 빈부를 떠나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능력과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 때 그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닐까.
만인이 좋아하는 꽃은 아니어도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강인하게 생존하며 온전히 살아가는 소박한 야생화처럼 내 인생도 닮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