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 책상위에 있는 작은 형광등만 켜고 “헛꽃에 반하다” 를 펴고 읽기에 빠져든다. 방이 따뜻해서인지 하루살이 한 마리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 왔나보다. 손등위에 앉더니 얼굴에 붙는다. 손으로 쫒았으나 불빛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도 않고 눈앞에서 얼른거린다. 하도 조그만 놈이라 봐주려고 했는데 반복해서 얼굴에 붙으니 간지럽기도 하고 짜증스럽다. 손바닥을 벌려 얼굴에 붙은 하루살이를 향해 일격을 가했다. 하루살이의 사체를 확인하려고 손바닥을 살펴보았으나 흔적이 없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몇 번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렸으나 그때마다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손바닥으로 때린 얼굴이 아프다. 방 등을 켜고 거울 앞에 다가가 얼굴을 보니 불그레하다. 약이 올라서 요놈을 잡으려고 둘러보았으나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여름에 쓰던 모기약을 들었다. 확 뿌려서 없애 버리려다가 조그만 놈을 상대로 무기까지 쓰는 것이 아무래도 비겁한 것 같아서 참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하 그런데 요놈이 또 나타나서 이번에는 콧등에 앉았다. ‘네가 정녕 명을 재촉하는구나 흥, 네가 정면 승부를 원한다면 내 기꺼이 응해주리라'

그래도 체면이 있으니 온몸을 다 쓸 수는 없고 사지는 가만히 두고 한쪽 손만 올리려는데 눈치를 챘는지 먼저 피한다. 참 얄미운 놈이다. 증오심까지 일어난다. 그때 이변이 생겼다. 펴놓은 책사이로 날아가던 하루살이가 종이에 부딪쳐 미끄러지는 것이다. 순간 흐흐흐 이게 왼 떡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괴롭히던 얄밉고 괘씸한 놈의 운명이 내 손 안에 있는 것이다. 이젠 들고 있는 책장만 덮어버리면 하루살이의 일생은 마감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끄러진 하루살이가 갱신을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날개 짓도 너무 미약한 것이 책에 부딪쳐 떨어지면서 잠시 기절을 한 것 같다. 갑자기 사형집행을 앞두고 하루살이가 불쌍해진다. 하루살이는 정말 하루만 사는 것인가. 그렇다면 벌써 밤이니까 그냥 놓아둬도 얼마 살지 못할 것인데 잔인하게 죽일 필요까지 있을까.

사형수는 사형집행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극도의 공포감이 엄습하면서 창백해지다가 냉소적으로 변한다. 사형 집행장까지 갈 때도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여 부축을 해야 한다. 그러나 막상 집행 장에 들어서면 짧은 시간이지만 체념에서 오는 평안함을 갖게 되고 자기가 줄 수 있는 사소한 것이라도 신세진 사람들에게 전해 달라고 하면서 고마움을 표한다고 한다.

만약에 요놈의 다리를 스카치테이프로 책갈피에 붙여 놓고 사형을 집행하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공포감에 파르르 떨다가 또 다시 기절을 할 것인가. 무엇을 남기겠느냐고 물으면 잔털에 붙은 먼지라도 친구에게 전해달라고 할 것인가.

또 내가 너를 어여삐 여겨서 살려준다고 하자. 너의 운명은 오늘밤을 넘기지 못하는데 그래도 날아다니면서 나를 괴롭히겠는가하고 묻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때였다. 하루살이가 정신이 드는지 날개에 힘을 주는 것 같더니 부르르하고 도망치는 것이다. 책장을 덮을 수도 있었지만 그냥 보냈다. 한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혼이 났으니 조용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반대로 또다시 원기왕성하게 내 얼굴을 향해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파리나 모기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귀찮았다. 몇 시간 있으면 죽을 운명인데 남은 시간 조용히 명상이나 하면 좋으련만 먹을 것도 없는 얼굴에 죽자고 달려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조금 전에 요놈의 운명이 내수중에 들어 있을 때 보시하는 마음으로 살려준 은혜를 아무래도 모르는 것 같아 슬프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문득 탈진하여 앞무릎을 꿇으면서도 죽을힘으로 달려가다가 명을 다하는 말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