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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영월 |
날짜 : 12-10-08 23:21
조회 :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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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李箱시인
김 영월
13인의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 오감도 시제1호 전문
아이가 아니고 아해이다. 아해는 아이의 옛말이다. 13명의 아이가 도로나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를 하고 있다. 이 급박함과 절박함은 밑도 끝도 없어 보일 수밖에 없다. 왜 하필 13명인가 여러 의견이 갈리지만 조선의 13도, 당시 남북이 통합된 상태에서 조선 땅은 13도로 나뉘어 있었으니 13인의 아해는 조선인 전체를 상징한다. 다른 해석은 13이란 숫자가 불길함을 의미한다. 서구에서 최후의 만찬에 참석했던 예수와 제자의 수가 13명이라 해서 숫자 13을 관습상 불길한 숫자로 여긴다. 우리가 숫자 4를 불길한 숫자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간의 체계를 나타내는 12시에서 한 시간을 더 추가한 숫자 13은 시간을 부정하는 상징이라는 의견도 있다.
시인은 우리들 모두가 질주를 하듯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인간이라고 하는 생명체의 본질 중 하나가 불안이며 우리는 늘 불안해서 무섭다는 것이다. 실존주의에서 우리 인간은 불안과 초조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즉 아웃사이더로서 문밖에 있는 사람으로 항상 무서울 수밖에 없다. 도로나 막다른 골목은 전부 문밖에 있지 않은가. 불안, 초조, 공포에 떠는 현대인의 초상을 상징하는 13명의 아이가 도로로 질주한다. 현대인들은 모두가 아웃사이더들이다. 우리 모두는 몸과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실존을 쓸어 담고 맥없이 살아갈 뿐이다. 무서움에 질려서 질주하거나 말거나하는 이상이 길러낸 13명의 대책 없는 아이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우리가 잘 아는 김소월,윤동주, 김기림, 정지용 등은 누가 봐도 시를 탁월하게 잘 썼다. 하지만 그런 시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금껏 쭉 써온 시들이다. 외국의 시인들 중 보들레르, 랭보, 포, 엘리어트도 마찬가지이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기존의 시 형식 안에 있었다. 1900년대에 들어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출몰해 엘뤼아르, 브르통, 차라 등이 파격적 시 형식을 선보이긴 했지만 특별히 이상만큼 확실하게 내세울 수 있는 시가 단 한 편도 없다. 이상만이 유일하게 전통적인 시의 형식을 포괄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형식을 깨뜨리는 시를 써 놓았다. 음악으로 치자면 이상의 시 언어만이 엘비스프레슬리와 비틀즈를 동시에 커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수 조영남(1945년- )이 죽기 전에 꼭 쓰고 싶었다는 이상(본명 김 해경. 1910년-1927년)의 시 해설서를 읽었다. 책 제목도 멋지다. ‘이상(李箱)은 이상(異常) 이상 (以上)이었다’는 동음이의어의 반복으로 이상의 시를 흉내 낸 것 같았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이란 뜻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영화에서처럼 그가 20대 중반부터 죽기 전까지 이상에 관한 책 한 권을 꼭 쓰고 말겠다는 결심이 이루어 낸 놀라운 이상의 시 해설서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도 쩔쩔매게 만드는 천재 시인, 이상의 해설서를 전혀 다른 분야의 그가 용기 있게(?) 아마추어의 실력을 발휘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는 사실이 우선 믿기질 않는다. 그러나 그의 책을 손에 쥔 순간 난해하기 짝이 없던 이상의 시가 실로 재미있게 느껴지고 비밀의 열쇠가 찰카닥 열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자칭 스스로를 ‘딴 짓거리의 명수’라고 한다. 이상이 시대를 앞서간 특이한 인물이듯이 저자, 조영남도 유행가 가수인가 하면 화가이고 복음성가를 부르고 신학을 전공했는가 하면 이혼도 두 번씩이나 하고 ‘맞아 죽을 각오로 쓴 100년만의 친일 선언’이란 책과 ‘예수의 샅바를 잡다’라는 종교 서적도 펴냈다. 이제 2010년을 맞이하여 이상 탄생 100주년에 그의 시 해설서까지 세상에 내놓았으니 정말 변화무쌍한 재주를 지닌 사람임에 틀림없잖은가.
조영남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떠받드는 이상은 어쨌든 넘기 어려운 산과 같은 존재이다. 그의 시는 어려운 한자도 많이 섞이고 외국어도 자주 나오고 워낙 비유와 상징이 어려운 데다가 무엇보다 한글 띄어쓰기를 무시해 버린다. 건축기사 출신이라서 그런지 조감도(鳥瞰圖)라고 해야 정상인데 새 조(鳥 )에서 획을 하나 빼고 까마귀 오(烏)자를 써서 슬쩍 오감도라고 변형해 버린 것부터 얼마나 인생과 사물에 대한 독특한 시선을 가졌는지 모른다.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시 제목도 그렇고 오감도에서 ‘시 제 4호’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를 거꾸로 바둑판 모양처럼 늘어놓고 ‘환자의 용태에 관한 문제’라 진단하면서 ‘의사 이상’이라고 서명하듯 말미에 적어 놓았다.
어두운 일제 시대에 태어나서 폐결핵으로 투병하며 지내다가 28세에 요절한 이상은 탄생 100주년이 지나서 조영남이란 뛰어난 독자에 의해 다시 조명을 받게 된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 ‘날개’와 수필, ‘권태’라는 명작도 남겼다. 문학의 장르를 뛰어 넘어 그의 천재성은 높은 하늘의 샛별처럼 빛나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될 만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말단 문인으로서 이상 시인이 지녔던 높고 치열한 문학정신이야말로 흠모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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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행원 |
12-10-09 1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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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월 선생님, 李箱에 대한 자세한 글, 잘 읽었습니다.
어려운 이상의 思念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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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2-10-09 2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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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이상에 관한 서적을 읽고 니힐리즘이니 하고 논하던 시절이 엊그게 같은데
벌써 늦가을 처럼 황혼을 바라보고 있으니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이상의 날개 종생기등
심오한 뜻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아무튼 이상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좋은 글
통하여 또 한 번 이상에 대한 깊은 상념에 젖어들어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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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월 |
12-10-09 2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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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시대에 태어나 천재성을 발휘한 이상 시인이
오늘 우리 문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저 안이한 태도로 문학을 대하고 작가 정신이 치열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게 되고... 다시 한 번 난해한 이상 시인을 통하여 제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윤행원 선생님, 임재문 선생님의 댓글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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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2-10-09 2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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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도'를 '오감도'로 잘못 쓰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왜 하필 13인의 아해인지 저의 생각을 내봅니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글자 수가 13이군요. 이는 마치 마방진의 원리와 같아서
대각선으로 맞춰보아도 '제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로 13자가 되니 다분히 의도적으로 13을 설정한 것이라고 봅니다. 즉, 결국엔 막다른 길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모로 뛰어보아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했다는 느낌입니다.절망으로 꺾여버린 인생에 스스로 가새표를 해버린 셈입니다. 그러므로 본래 의도했던 조감도는 죽음을 예고하는 까마귀(烏)로 변한 것이 아닐까요. 내가 그의 적인지, 그가 나의 적인지 모르는 두려운 현실 앞에서는 설령 길이 뚫려있다하더라도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으니 결과는 마찬가지가 아닐는지요.
미련한 자의 허황한 상상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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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월 |
12-10-10 2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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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시를 어떻게 이해하든 그것은 독자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희순 선생님의 13이라는 숫자, 조감도가 오감도가 된 해설이
어쩌면 수긍이 갑니다. 이상은 건축기사 출신이기 때문에 그런 기발한
발상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좋은 해설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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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2-10-19 2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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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작품은 너무나 어려워 보통의 사람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오감도' 작품만 봐도 고개가 끄덕이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뭔가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예술의 경지라 할 수 있겠지요. 이상님의 상상의 '날개'를 다시 되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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