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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영월 |
날짜 : 11-11-23 16:56
조회 :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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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강
김 영월
황사영의 머리는 대나무 삼각대에 매달려 효수 되었다. 머리가 잘린
사체들은 모래밭에 흩어졌다. 아침에 거지 아이들이 형장으로 몰려 왔다.
거지 아이들이 토막 난 사체에 줄을 매서 마을로 끌고 나갔다. 목이 잘린
사체는 살았을 때 누구였던지 알 수 없었다. 거지 아이들은 민가의 대문에
사체를 들이밀며 밥을 구걸했다. 집주인들이 질겁해서 밥을 내다 주었다.
-김훈의 소설, 흑산 중에서
신유박해 때(1801년 순조 1년) 정순왕후는 천주교 박해령을 선포하고 전국의 천주교도들을 잡아 들여 처형했다. 왕후는 악명 높은 오가작통법 五家作統法으로 다섯 가구를 한 통으로 묶어 천주교도를 감시하고 고발케 하여 그 중에 한 집에서라도 해당자가 나오면 다섯 집이 모두 화를 입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죽은 사람이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넘었는데 이 중엔 진짜 천주교 신자도 있었지만 애매하게 연루돼 죽은 이들도 많았다. 정순 왕후가 천주교를 탄압하는 데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왕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군신간의 상하 관계를 중시하는 조선의 지배 윤리인 유교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천주교의 위험성을 미연에 막는다는 것이요, 둘째는 천주교를 공부하거나 믿는 사람 중에 벽파의 반대파인 시파나 남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천주교도를 잡아들이는 것은 곧 유교 윤리를 받든다는 명분 외에 반대파인 정적을 제거하는 이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벽파(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반대파인 시파에 대한 찬성측에 있는 파벌)인 정순 왕후는 당연히 천주교도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정책을 내세웠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작품 속에서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셋째)을 중심으로 그의 형제들인 정약용(넷째), 정약종(둘째), 정약현(첫째), 정약현의 사위인 황사영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주여, 어서 오소서. 정약종은 하늘을 우러르며 웃으면서 칼을 받았다. 도성 쪽으로 날이 저물고 서강 쪽 하늘에 노을이 번져 있었다. 그의 웃음은 평화로웠고 큰 상을 받은 자의 기쁨으로 피어나 있었다. 칼 쥔 망나니는 연거푸 술을 마시고 칼춤을 추며 빙빙 돌았다. 망나니는 한 칼에 약종의 목을 끊어내지 못했다. 망나니는 반쯤 잘린 약종의 목에 다시 칼질을 했다. 정약종의 머리는 두 번 잘린 칼질에 떨어져 나갔다. 잘린 얼굴이 평안했다.
-김훈의 소설, 흑산 중에서
명문 사대부 집안으로서 천주교를 받아들인 정약전 형제들은 가장 신심이 깊었던 정약종은 참수 당하고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정약용과 정약전은 각각 강진과 흑산도로 유배당했다. 정약용은 그 곳에서 18년 동안 고독과 싸우면서 목민심서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고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죽을 때까지 귀양이 풀려나지 못한 채 우리나라의 해양생물의 첫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자산어보’를 남겼으니 어쩌면 전화위복의 삶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언제 무슨 환경에 놓이든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제주도로 유배 되었던 추사 김정희도 그 곳에 머무는 동안 유명한 ‘세한도’를 남기지 않았는가.
조카사위인 황사영은(1775년-1801년) 장인어른인 정약현에게 천주교 교리를 읽히고 신유박해 때 유명한 황사영 백서 사건을 일으킨다. 그는 청나라 신부로서 국내에서 활동 중이던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고 천주교 박해를 피하여 충청북도 제천에 있는 배론의 옹기 마을에서 토굴 안 생활을 했다.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서양군함의 파견 등을 골자로 하는 편지를 흰 비단 폭에 적어 청나라의 주교 신부에게 은밀히 전하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체포되어 가장 심한 능지처참형을 받았다.
주문모 신부는 위험이 다가오자 청나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압록강에 당도해서 국경을 넘으려 할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네가 핍박 받는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려느냐? 너는 목자이니 목자의 자리로 돌아가라.
그는 즉각 발길을 돌려 서울로 돌아와서 의금부에 자수하고 모진 고문 끝에 새남터 형장에서 참수 당했다. 군사들이 대나무로 어른 키만한 삼각대를 세워 놓고 그 꼭짓점에 주문모의 머리를 매달아 놓았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몸뚱이는 모래밭에 엎어져 있었다.
소설가 김훈은 일산에 살면서 마포구 합정역 근처에 있는 절두산 성지(원명은 잠두봉으로 누에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짐)를 바라보며 옛 양화진 나루터에서 오직 믿음 때문에 죽어간 순교자들을 떠올렸다. 140여 년 전에 조선의 썩은 정권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학 邪學의 무리라고 무조건 잡아다가 목 자르고 그 시체를 강물에 던졌으니 그 숫자가 일 만 명이 넘었다. 그들이 흘린 피에 대해 작가는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 ‘흑산’이란 소설을 구상하게 된 동기를 얘기 했다.
이 땅에 천주교가 들어 온지 200여년이고 개신교는 100여년 쯤 된다. 나는 개신교 신자로서 세례 받은 지가 28년 째 이르고 있다. 지금의 크고 안락한 교회당에서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누릴 수 있기까지 초기 기독교도들의 수많은 피 흘림과 절규, 희생 앞에서 과연 얼마나 감사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 시인, 상한 영혼을 위하여중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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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1-11-23 1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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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귀하고 소중한 글로 저녁을 엽니다. 편편히 공감과 소회속에 알지못했던 사실을 접할때마다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이런 감정은 집근처의 양화진 나루의 순교지와 절두산 성지를 지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란 이렇듯 지난 날의 아픈 감정으로 하여 그 가치를 일깨워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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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1-11-23 1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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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그들이 뿌린 피로 인하여, 우리나라 기독교 신앙인들의 수가 얼마입니까. 오늘날 세계적인 성과로 나타 났다고 보아집니다. 선생님 느림회는 언제쯤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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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11-23 2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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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양화진에 들러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돌아봅니다.
가까이에는 절두산 순교지도 있지요.
해 바뀌고 봄볕이 어릴 무렵 그 일대를 탐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누가 압니까.
큰 영감을 받아 소설가 정연희 선생이나 김훈 작가 처럼 대작을 쓰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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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1-11-24 0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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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월 부회장님 ! 저도 신앙인으로서 참으로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순교자가 된다는것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정말 민주화가 되어 종교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에 태어난것이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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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1-11-24 1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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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천주교의 성지 앵화산 밑 천진남과 해미읍성(한국수필작가회 따라)과 로마의 콜롯세움을 다녀와서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들어올 무렵 이렇게 많은 순교를 했는데 개신교에서는 나몰라라 하는 것을 늘 섭섭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이야기엔 전연 귀도 기울이지 않는 모습 때문입니다. 우리 부회장님이 이렇게 알리니 아주 보기 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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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월 |
11-11-25 1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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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음의 평안을 얻고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 그냥 주어진게 아니었습니다. 진리 앞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순교자들의 삶에 잠시나마 머리 숙여 보고 싶었습니다. 문인들은 어쩌면
언제나 진리와 아름다움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댓글 달아 주신 우리 작가회 회원님들의 열정과 수필 사랑에 존경을 보냅니다.
점점 싸늘해지는 겨울의 문턱에서도 마음의 온기를 잃지 마시고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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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1-11-26 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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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으로서 참 귀한 글을 읽었습니다.
늘 발목 신앙에 머물고 있는 저는
이 글을 읽으며 내내 숙연했습니다.
아직도 신앙의 뿌리가 깊지 못하니 말입니다.ㅎ
거듭 나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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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1-11-28 2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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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진실하신신앙심이밀알이되어좋은작품이탄생된듯합니다.김훈의소설문장을좋아해잘읽곤합니다.마치수필같은느낌이랄까요.짧은문체도좋고역사적인소설도감동을동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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