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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14-06-24 13:43
조회 :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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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물
박 영 보
“할머니, 매이 아이 해부 어 글래스 어브 허니 워터?”
‘허니?’ ‘워터?’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쳐다 보고 있는 아내. 꿀?, 물?. 녀석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짐작은 간다. 아내가 “찬 물에다 꿀을 넣어 섞어서 마시는 물을 원하느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아니 요새도 아이들에게 저런 걸 마시게 하나 싶기도 했다. 올해 유치원에 가게 된 나이가 된 손자녀석이 목이 탄다며 꿀물을 타 달라는 것이었다. 녀석이 저런걸 다 원하고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이제까지 우리 손으로 그런 걸 해준 적이 없었다. 녀석에게 무엇이든 먹이거나 마시게 하려면 별의 별 짓을 다 해가며 유도를 해야 할 정도로 먹는 것에 까다로운 편이다. 언제 어디서 그런 것을 먹어본 일이 있느냐니까 ‘마미의 마미’ 집에서 먹어봤는데 맛이 있었다고 한다. 녀석의 외할머니가 만들어 준 적이 있었던가 보다.
찬물에 적당한 량의 꿀을 타서 어름을 넣고 저어 빨대까지 꼽아주니 잘도 마신다. 한 모금 쭉 마시고 나서 카~악 하고 소리를 내며 마시기를 반복한다. 입이 짧아 과일 주스나 소다수 중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입에도 대지 않는 녀석이 아무 불평도 없이 마시는 걸 보면 입맛에 맞는가 보다. 큰 수고나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녀석의 마실 거리 한 가지가 개발된 셈이다. 재료가 설탕이 아닌 꿀이고 어쩌다 한번씩 마시는 정도이니 건강에 우려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어릴 적 일이 생각이 난다. 한 여름 깊은 우물에서 퍼 올린 찬 물에 사카린을 타서 꿀꺽 꿀꺽 마시고 있는 이웃을 넘겨다 보며 부러워했던 가난한 시절. 값 비싼 설탕 대신 이따금씩 이라도 사카린을 탄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에 겨워하던 시절, 설탕 물은 고사하고 꿀물 같은 걸 생각이나 할 수 있었던가 싶다.
그런데 왜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있는 걸까. 언감생심, 간식이라는 말 자체도 모르고 지내던 시절. 장독대의 고추장 단지 옆에 앉아 텃밭에서 따온 풋고추나 마늘종을 푹푹 찍어 먹으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간식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풍요라는 것을 질이나 양 같은 것만으로 판단 하려거나 해석해보려 하지 않아도 됐던 시절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 녀석이 부러워진다. 어디 꿀물 한 모금 정도일까.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녀석. 그런 걸 채워줄 수 있는 부모가 있고, 거기에다 또 다른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는 할미, 할배까지 있으니 이런 것도 복이 아니겠는가. 칠십을 넘어선 나이에 꿀 물 한잔을 받아 들고 있는 녀석을 부러워하거나 시샘을 하고 있다니 망령의 문턱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시샘이라고는 했지만 작으나마 녀석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는 게 기쁘기만 하다. 나에게도 누군가에게 필요로 하는 요소가 남아 있다든가 아니면 나 자신에 대한 존재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해 주기도 하니 고마운 일이 아니겠는가. 물 한 모금을 가지고 녀석에게 생색을 낼 일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작은 일로라도 무언가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바램의 한 부분이라도 채워주고 있으니 고마울 수 밖에~.
한 여름, 농부들이 땡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다가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벌컥벌컥 마시는 한 모금의 샘물. 땀을 식히고 갈증을 달래는데 그것이 꿀물이나 설탕 물이 아니고 맹물이면 또 어떠랴. 그럴 때의 물맛을 경험해 본 사람은 그 시원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각양각색의 개발된 음료수와 비교를 할 일은 아니겠지만 거기에 사카린, 설탕, 꿀, 아니면 미숫가루 같은 것이라도 가미한다면 조국의 농촌 같은 데에서나 맛볼 수 있는 음료의 새로운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원’이라는 것도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시원한 한 모금의 꿀물을 마시며 카~악 하며 숨을 크게 내쉬고 있는 녀석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국의 체질로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 “한국 놈이 아니랄 까봐~”라며 씨~이 웃고 있는 아내. 이 사람도 지난 날들이 떠오르는가 보다. 오랜 세월 동안 이런 곳에 살다 보면 별의 별 자잘한 일이나 광경들을 통해서도 수시로 떠오르는 지난 날의 고향 모습들.
손자녀석의 꿀물을 대하다 보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위치에 머물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곳에 살면서 단 한번도 생각조차도 해본 적이 없던 한 모금의 꿀물이 시사하고 있는 의미에서 또 다른 색깔의 묘한 느낌이 온다. 갈증에 목이 탈 때 목을 축여주던 한 모금의 꿀물. 나는 과연 이 어린 녀석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꿀물의 역할을 하고는 있는 걸까. 꿀물은 되지 못할지언정 작으나마 갈증이 심할 때마다 주변에 있는 이들의 목을 축여주는 맹물의 역할만이라도 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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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4-06-30 2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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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국인의 핏줄을 타고 난 모양입니다. 손자가요.
누구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 쉽지 않지요.
하지만 그렇게 노력하며 살다보면 사랑이 싹트더군요.
우리 어렸을 적엔 꿀물은 참 귀한 거였죠.
문득 저도 시원한 꿀물이 생각납니다.
요즘 흔한 가공 음료는 체질에 안맞아 안먹게 되네요.
선생님의 손자가 이해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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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7-17 2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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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국에서 지낸 세월이 한국에서 보낸 세월보다 긴 세월입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아름다운 추억거리로 남아 있는 걸 보면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일는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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