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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연서


제가 10월 29일 실버넷뉴스 10주년 기념행사 ‘IT와 함께하는 행복한 실버세상’ ‘사랑의 이메일 보내기’ 공모전에 응모해 입상한 글입니다.
작가회 선생님들과 아름답게 깊어가는 인생의 가을을 함께 나누고 싶어 올립니다.


-사랑의 이메일

아내의 편지

제목 : 당신의 새로운 도전을 축하해요

늦은 나이(68세)에 컴퓨터를 배우겠다는 당신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축하해요. 지금은 독수리 타법으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뛰기도 하고 날기도 하겠지요.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앞으로 인터넷을 알게 되면 또 다른 세상이 당신 앞에 열릴 거예요.

늘 듬직하고 성실한 당신이 곁에 있어 행복해요. 우리 여생은 급변하는 세상을 천천히 익혀가며 즐겁게 살았으면 합니다. 어쩌다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조금씩 양보 하자구요. 돌아서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얼굴 붉히지 말고요.

우리는 6.25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지요. 폐허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청춘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난의 삶을 살았지요. 지금은 당시에 상상도 못했던 천국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모든 게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결혼 한 지 40여 년이 흘렀는데도 우리는 서로 ‘여보, 당신’ 하는 부부의 호칭을 한 번도 써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이메일을 통해 맘껏 불러요. 워낙 과묵해 말로는 표현 못하는 당신의 깊은 마음도 긴 연서로 털어놔 봐요. 그럼 타자 연습도 많이 되고 우리의 사랑도 더욱 깊어지겠지요.

내일은 저 혼자 고향의 선산 벌초 하는데 갑니다.

모처럼 당신 혼자 있게 되었네요. 하루 종일 내 생각하고 있을 거죠?

가끔 떨어져서 서로 그리워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유년의 뛰놀던 뜰을 돌아보러 가는 난 즐거운데 혼자 집에 있는 당신이 걸리네요. 당신에게 즐거운 일이 생기면 나도 좋아 지는 것처럼 당신도 그럴까요?

우리는 전생의 무슨 인연 이였기에 결혼 후 줄곧 그림자처럼 붙어살까요. 낙농을 천직으로 삼았던 특수성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천생연분을 만나 그렇다고 생각 합니다. 당신 생각은 어때요? 이 대답은 내가 저녁에 귀가하면 꼭 말 해줘야 해요.

좋아하는 반찬 몇 가지 준비해 놓았으니 점심 잘 챙겨 드시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쓴 편지를 제 이메일로 보냈으면 합니다.

당신이 난생 처음 보내는 이메일이 되겠네요. 제가 알려드린 순서대로 차근차근 해보셔요.

나 당신의 짝이 된 것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저도 결혼 후, 처음 이런 말을 하지 싶네요. 글의 위력인가 봅니다.

그럼 내가 다녀올 때까지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당신의 영원한 짝 초록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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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편지


제목: 가을연서

Sweet heart!

9월 첫째 주일, 참으로 오랜만에 나 혼자 집에서 조용한 시간을 갖게 되었소. 가을의 초입에서 독서삼매에 빠져있거나 아니면 무아의 경지에서 명상에 잠겨 인생을 음미하며 지내는 것도 의미 있고 값진 일이라는 생각이 드오.

언제라도 어릴 적 뛰놀던 정든 고향을 찾아간다는 것은 가슴 설레고 즐거운 인생사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오. 그 일은 누구나 공감하는 수구초심의 귀소본능이 아니겠소.

문득 그 옛날 초가의 풍경이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소.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구수한 숭늉, 물안개 자욱한 개울에서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와 여름 내내 피눈물 나게 울어대는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와 환청으로나마 듣고 싶은 망상에 잠겨보오.

Sweet heart !

그동안 당신은 고향을 몇 번 방문하였기에 오늘은 그 느낌이 좀 무뎌졌는지 모르겠소. 그래도 남다른 감회가 있으리라 생각되오.

수년 전, 나도 당신과 함께 어릴 적 피난시절을 보냈던 논산의 작은 고을을 방문한 적이 있지 않소. 나는 그곳이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다오.

폐허가 되어 아무도 살지 않는 옛집을 찾았을 때가 생각나오. 젊었던 아낙이 노파가 되어 불편한 몸으로 반겨주고, 미역 감고 송사리 잡던 작은 개울은 이미 말라 오물과 폐수의 웅덩이로 변해있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보다 서글픔이 앞섰다오. 그것은 "안톤 슈낙"만이 느끼는 생각이 아닐 거요.

내가 초등학교 때 소풍갔었던 저수지를 처음 찾아 본 순간도 60여 년 전의 기억이 너무나 새롭게 떠올라 끓어오르는 묘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다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희로애락에 민감해지고 센티 해 진다더니 그래서일까!

sweet heart!

오늘 당신은 오랜만에 유 소년기를 보낸 고향 땅에 갔으니 그때 생존했던 어른들은 거의 타계 하였고 가까운 지우들은 반백의 황혼 길에 접어들어 알아 볼 수 없게 되었으나, 의구한 산천은 넓은 도량으로 먼 방탕 길에서 돌아온 탕아를 맞이하듯 반겨 주리라 생각되오.

Sweet heart !

우리는 항상 자연과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긍정적인 사고로 매사에 감사하는 구도자의 심정으로 살아갔으면 하오. 9월이 가면 10월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만고불변의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삽시다. 늘 그래왔듯이.

당신은 오늘 어릴 적 함께 뒹굴며 놀던 살붙이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리라 믿으오. 난 아름다운 추억에 젖어 있는 당신의 행복한 모습을 그리며 여기 내가 좋아하는 시구를 하나 인용하면서 이 편지의 끝을 맺을까 하오.

기원전 10세기경에 살았던 Greece의 서사시인 Homer의 작품이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바람이 땅위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또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가을로 접어든 우리의 인생이 이메일이라는 매체를 통해 희망찬 회춘을 꿈꾸며….

                    당신의 영원한 반려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