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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용순 |
날짜 : 12-04-04 19:52
조회 :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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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슘
아침 8시까지 도착하기로 예약된 안내인과 차량이 한 시간을 넘기고도 나타나지 않는다. 기다리다 못해, 호텔 직원의 안내를 받기로 하였다. 모두가 풀린 나사처럼 여유롭다. 소도시임에도 거리에는 흰 천을 머리부터 발목까지 두른 인파가 가득하다. 그들 모두 한쪽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몸에 두른 흰 천은 민족 정장이며 일요일이라 교회에 가는 길이라 한다. 인파를 헤치고 가다, 돔 양식의 큰 교회를 만났다. 미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뜰 안과 바깥 길거리까지 가득하다. 이 교회가 이 나라 기독교인들의 성지(聖地)라 한다.
이곳 ‘악슘’은 솔로몬 왕과의 전설 같은 로맨스로 유명한 ‘시바’여왕의 고도(古都)이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구약성서와 코란 등에 나타나며,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이 조금씩 변하였다한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율부린너와 지나롤로부리지다가 주연하였고, 나도 젊은 시절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성서나 코란에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적인 사실은 분명한 것 같으나 그 내용은 흥미 있게 각색된 모양이다.
3000여 년 전 이스라엘 ‘솔로몬’ 왕의 명성을 듣고, 찾아간 여왕 시바가 솔로몬의 끈질긴 구애로 사랑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에 머물었던 시바는 솔로몬 왕과 사이에 아들 메넬리크를 낳아 악슘으로 돌아온다. 메넬리크는 성장한 후 아버지를 찾아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고, 왕은 아들에게 성궤를 선물로 주었다. 이 메넬리크1세가 세운 왕국이 에티오피아의 기원이라 한다. 나라가 발원한 도시의 이름을 따 악슘 제국으로 불렀다.
한편으로 이 이야기는 에티오피아와 예멘 사이에 역사왜곡 논란이 있다. 예멘 남부 마리브에도 시바여왕의 궁전 터가 있다. 에티오피아인들의 조상은 예멘에서 홍해를 건너왔으며, 그들이 이주해 오면서 시바여왕의 역사까지 까지 가지고와, 에티오피아의 역사가 되었다 한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자신들이 솔로몬 왕과 메넬리크 1세의 후손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그것으로 일체감과 자부심을 가지며, 통치자들 또한 통치의 정당성으로 삼아왔다. 근세 왕국 헌법에도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후손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셀라시에 황제가 메넬리크 1세로부터 이어진 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규정하였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문명 중, 이집트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고유문자를 가지고, 수천 년 동안 국가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70년대의 기근과 공산 쿠데타로 셀라시에 왕이 폐위, 암살되면서 솔로몬 왕조도 끝을 맺었다.
그들은 성지인 교회 건물 밑에 솔로몬 왕이 그 아들에게 선물한, 십계명이 새겨진 성궤가 묻혀있다고 주장하였다. 성궤란 하느님이 모세에게 준, 번개에 의해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을 넣은 상자이다. 솔로몬 때는 예루살렘 성전에 보관되었다가 BC587년 바빌로니아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한다.
현지 에티오피아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성궤가 에집트를 거쳐 에티오피아 악슘에 갔다’, ‘솔로몬 왕이 아들에게 선물하였다’, ‘아들이 몰래 훔쳐 왔다’, ‘악슘의 많은 교회 밑 어디엔가 묻혀 있다’는 등등의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스티븐스필버그 감독과 해리슨포드가 주연한 영화 ‘레이더스’에서도 이 성궤를 찾는 고고학자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어쨌든 지금 성궤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흥미로운 역사 미스테리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교회 앞으로 높이 10여m의 비스듬히 서있는 돌탑과 넘어져 몇 동강난 긴 탑(塔),아라베스크가 울타리 속에 보호되고 있었다. 문자는 새겨 져 있지 않고, 문과 창문 비슷한 것이 조각되어 좁고 긴 마천루 모양이다. 그중 제일 큰 것은 이태리 식민지 시절 약탈되었는데, 이제 문화재 반환 요청으로 곧 돌아올 것이라 한다.
에티오피아는 1936년부터 5년간 이태리 파시즘으로부터 불법 점령을 당하였고 당시 국왕 셀라시에 1세는 영국으로 망명한 적이 있었다. 그 탑의 땅 밑에는 역대 왕들의 무덤이 있다한다. 옆으로, 산자락에 연결된 수영장 비슷한 크기의 연못이 ‘시바’ 여왕이 수영을 즐기던 곳이란다. 우리는 여기에서 귀한 물을 만날 수 있었다. 여인들 몇 명이 붉은 황토 물을 항아리에 퍼 담고 있었다.
시바여왕의 왕궁 터라는 ‘둔구르’ 유적지에 안내되었다. 교회에서 1km 남짓 떨어진 곳의 돌투성이 경작지 가운데 약 1000평 정도의 넓이로, 둘레에 높이 1.5m 가량의 돌담이 둘러져있다. 안으로는 낮은 돌담으로 20여 칸의 좁은 공간들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가 3000여 년 전 ‘사바’ 여왕이 살았던 궁터라 한다. 옛것이라면 이끼 낀 고색(古色)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주위의 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방금 쌓아 놓은 것 같은 좁은 공간들이 궁터가 사실인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안내인이 작은 녹선 동전을 주머니에서 꺼내 놓으며 여기에서 주운 것이라며 200USD에 사라고 한다. 보아하니 왕조 말엽 100년 된 것이라 해도 믿기 어려운데 3000년 전 것이라니, 아직 한국인의 영악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관심을 보이지 않자 가격이 자꾸 떨어져 10USD까지 내려간다.
욕심내어 마시고 싶은 신선한 공기, 코발트빛 하늘에서 내려온 깨끗한 햇빛이 바늘처럼 피부에 꽂힌다. 나른한 오후, 햇빛이 점령한 시골 공항 의자에 피곤한 몸을 잠시 맡겼다. 얼마 후 프로펠러 소리가 공항 청사 안으로 내려앉는다. 작은 비행기는 중력을 그슬려 오르느라 가쁜 숨을 토한다. 저 하늘 아래에는 배들이 보이지 않은, 크고 텅 빈 흙 빛 호수와 짙게 그늘진 꼴 짜기, 원초적 모습을 간직한 거대한 대지의 주름들이 펼쳐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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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2-04-05 0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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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가 기독교의 성지라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생소하기만 한 에티오피아의 역사와 유적들에 대한 이야기가 호기심을 더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용순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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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2-04-08 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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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에티오피아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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