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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09-04-28 19:18
조회 :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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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를 바라보며
임병식
아파트 뒤쪽 베란다에서 전면을 바라보면 큼지막한 팽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어림잡아도 수령이 이백년은 되어보이는 나무다. 나는 가끔 이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 아름이 되어 보이는 몸피가 우람하기도 해서지만 수관이 볼만해서이다. 이 나무의 그림자는 하루에 두 번, 이른 오전과 늦은 오후에 길게 그림자를 도로까지 늘어뜨린다. 한번은 서쪽으로 한번은 동쪽으로. 그런 나무는 마을에서 보면 정중앙 들머리에 위치해 있다.
그 나무밑에서 사람들은 잠깐 쉬기도 하고 장기판을 가지고 나와 소일을 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좋은 쉼터 구실을 해주고 있다. 내가 이 나무와 마주 하기 시작한 건 이곳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부터다. 7년 전이니까 그 세월만큼 지켜봐온 셈이다.
지금 이 나무는 봄을 맞아 한창 연두색 이파리를 피워내고 있다. 아마 머지않아서 그 빛깔은 녹색으로 변하고 이어서 뜨거운 태양아래서 녹음이 짙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헌연하게 뻗은 수관만큼의 넓은 그늘을 선사할 것이다.
이 나무는 도로가에 있기는 하지만 집 담장에 붙어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다. 그런 까닭에 왜 이 나무가 거기에 서 있을까 조금은 궁금하다. 하나,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산 밑으로 촌락이 형성된 옛날이나,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지금이나 이곳은 동구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심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리 잡은 형세는 옹색하기 짝이 없다. 턱하니 한자리를 차지 하지도 못하고 남의 집 담 벽에 붙어 있으니 딱해 보인다. 아마도 그리된 데는 원래 땅이 주인이 있는 사유지인 관계로 마당을 넓히는 과정에서 그리 됐거나, 아니면 나중에 아예 그곳에 새로 집을 지어 버려서 이런 모양이 되지 않았나싶다. 그리 생각이 되는 것이, 유독 그 쪽만 불쑥 튀어나와 있는 것이다.
그런 형편임에도 그 옆에는 길이 나있어 사람들이 매일 오고간다. 그들에게서는 두 가지 모습이 감지된다. 우선 옷차림을 보면, 나무의 변화를 따라 달라진다. 한 달 전만해도 나무의 색깔처럼 어둡고 칙칙한 옷차림새이더니 새순이 트고 그 색조가 연두색으로 물들어가니 복색도 한결 화사해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니는 방향도 보면, 서편에서 동편으로 나갈 때는 주로 용무를 보러가는 지 빈손으로 나갔다가 돌아올 때는 손에 물건들을 들고 들어온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큰 교회가 반대편에 있는데, 이때는 그 길을 통해 나가는 사람들이 제각기 성경책을 들거나 혹은 겨드랑에 끼고 지나간다.
이들을 보면, 무슨 생각들을 하고 갈까 하는 상념에 젖게 된다. 목사님의 설교를 되새기며 힘을 얻은 것일까. 아니면 교회를 빠져나옴과 동시에 현실의 팍팍한 삶과 조우하지 않을 수 없어 살아갈 일을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활기찬 발걸음에서는 거칠 것 없는 하루 의 행보가 엿보이지만, 가끔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근심의 무게도 함께 느껴진다.
아니, 교인들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훨씬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읽혀진다. 허리 굽은 노인이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생이 이미 종착점에 다다른 것이 보이고, 푸성귀를 내다팔기 위해 보퉁이를 인 아주머니를 보면 고단한 일상이 그려진다.
나는 이따금 베란다에서서 이런 사람들의 군상 말고, 시시각각 변하는 나무의 변화만을 살피는 때도 있다. 내가 이사 오던 때는 아직 이른 봄이어선지 팽나무는 앙상한 나목으로 서 있었다. 그런데 여름이 되니 헌헌장부처럼 풍채를 자랑하며 가지를 느려뜨렸다.
이 팽나무를 바라보노라면 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삶이 여과없이 조명이 된다. 그것은 어찌 보면 팽나무가 배경이 되어 배광효과를 연출하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가끔 팽나무와 그 곳을 지나는 사람을 비교해 보는 때가 있다. 나무는 한곳에 심겨져 움직이지 못하는 반면에, 수명은 사람보다 몇 갑절이나 오래 산다. 그리고 나무는 해마다 열매를 맺되, 다르게 맺고 이파리도 새롭게 트여낸다.
이에 비하여 사람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제 생각대로 살아가기는 하나, 불가역성(不可逆性)의 삶이다. 세세연연 바뀌는 달력을 보고 살기는 하지만, 그것은 한갓 인위적인 수치로, 각주구검(刻舟求劍)과 같은 허망한 행위로서 나무처럼 새롭게 태어나지는 못한다.
마음의 각오일 뿐,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그런 까닭에 사람은 살아가면서 나무를 바라보고 새로 태어나는 자세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훤히 지켜보고 있는 팽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나무가 무언으로나마 가르치고 타이르는 바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된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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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09-04-29 0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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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 구루에 상상의 나래를 어떻게 펼쳐 가시는가 하면서 읽었습니다.
저의 아파트도 처음에는 자유로가 보이고 그 건너 김포가 보이더니 인구가 많아질 수록 이젠 바람 부른 날이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고층 건물이 아예 시야를 가리구 있구요. 지금 일산에서는 국제 꽃 박람회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즈음 안보이던 제비를 봅니다. 이 놈도 강남에서 꽃 구경 온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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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4-29 1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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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랫녘에서는 제비 보기가 어렵습니다. 전에는 흔해 빠진 것이 제비였는데,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보금자리를 윗쪽을 잡은 것 같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홈피가 너무 침체되어 있어 걱정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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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자 |
09-04-30 1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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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회장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놓고 생각을 넓혀가며 한 편의 좋은 수필을 낳으셨네요. 저도 앞베란다에서 잘 보이던 두그루 부부나무가 개발이라는 칼날에 무참히 베어지던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늘 바라보며 위로를 삼던 그 큰 나무가 없어지니 허전하기 짝이없습니다. 도시로 탈바꿈하느라고 다 밀어붙였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나무가 살아온 세월이 너무 아까워서 그대로 살려두고는 안되는 일이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그 팽나무는 오래 그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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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4-30 2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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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자 선생님, 잘 계시는지요.
문학기행에 꼭 참가해 주십시오.
보성이 왜 예향이며, 의향이고, 다향인지를 아시게 될 겁니다.
현지에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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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05-02 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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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를 바라보시며 사색에 잠긴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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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5-02 1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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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생님 잘 계시는지요. 문득 선생님 사시는 곳이 어딘가 싶어 지도를 찾아보니
남양주보다 가까운 곳이 있군요. 저는 춘천 가까운 곳인가 했습니다.
아침 버스 타시는데는 그리 지장이 없겠습니다.
문학기행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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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05-02 2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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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려서 팽나무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그 팽나무 열매가 노랗고 아주 콩알 보다 약간 작은 열매로 노랗게 익어 그 열매를 먹었던 기억도 있구요. 대나무로 딱총을 만들어 그 팽을 총알로 써서 딱총을 쏘던 어린 시절도 있었답니다. 그보다 열매가 약간 크고 흑색으로 익는 팽은 금팽이라고 불렀는데 좀더 달착지근 하던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팽나무에 대한 글 잘 읽고 저 어린 시절 한 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몸은 이제 많이 나아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치기도 잘하지만, 낫기도 잘하거든요 염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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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5-03 0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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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이제 많이 나아서 걸어다닐 정도가 됐다니 다행입니다. 팽나무의 열매가 두가지라는 걸 잘 알고 계시군요. 작은 팽은 신맛이 나는데 굵은건 달작지근 하지요. 문학기행에는 참석이 가능하실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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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05-03 1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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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처럼 교회에 가서 대예배 드리고 교회서 점심 먹고 또 1시부터 구역예배까지 드리고 왔답니다. 이제 조금씩 걷는 연습을 하는 중입니다. 아주 완쾌되기 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번 문학기행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래도 무리하면 안되겠지요. 이제 또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겠습니다. 그동안 염려해주셔서 두번이나 병문안 오신 윤행원이사님과 전화주신 임병식 회장님을 비롯해서 염려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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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5-04 0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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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좋아지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외출을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아까운 곳을 택하여 가볍게 걷는 것은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문학기행을 함께 했으면 좋을텐데, 아쉽습니다. 건강 잘 보중하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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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5-07 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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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라던 동네에도 우람한 팽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별다른 장난감도 없던 그 때 그 열매는 제법 흥미로운 놀이기구의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딱총의 대나무 관 양쪽 끝에 팽나무 열매 하나씩을 넣고 공기 압축으로 쏘며 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팽나무를 생각하곤해 왔었는데 지난 날들을 불러 일으켜 주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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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5-07 1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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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에 대한 추억은 모두에게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을의 동네 한 가운데는 거대한 팽나무가 있었지요.
잘 읽은 검은 열매는 아주 달고 맛이 좋았습니다.
그것을 말리면 쫀득하니 제리 맛이 났지요.
노랗게 읶는 작은 팽은 그렇게 맛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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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09-05-10 0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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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장님의 글을 읽으면 항상 범상하고 예리한 관찰력에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저는 외국출장과 집안 혼사 문제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늦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문학기행은 그 멀리까지 가는데도 불구하고 대단한 성공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땀뻘벌 흘리며 준비하신 임회장임과 박 사무국장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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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5-10 1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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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철 선생님, 어제 만나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당일치기로 올라가셔서 많이 피곤했을 겁니다.
그리나, 이런 때가 아니면 그 먼곳을 언제 다녀가시겠습니까.
원행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회원님들이 참석해 주셔서 많이
기운이 났습니다.
아드님 혼사 잘 치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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