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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희순 |
날짜 : 11-08-08 17:55
조회 : 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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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글쓰기는 두렵다. 첫 문장을 뽑아내기 위한 고통은 아이를 낳을 때의 그것과 진배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편집자의 변이다.
나는 신장결석 때문에 고통을 겪어왔다. 콩팥에서 빠져나온 돌이 요로를 타고 힘겹게 내려오다가 걸리면 매서운 통증이 온다. 그 아픔을 산고에 견줄 수 있을까. 마침 병원에서 누님을 만났다. 아기 낳을 때보다 더 아프더라고 한다.
시인 김용택은 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그가 교과서 외에 다른 책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오리를 길렀으나 망해버렸다. 서울로 도망친 그는 우연히 청계천 헌책방에서 엄청난 책들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가 최초로 산 책은 ‘장만영 시 선집’이었다. 1970년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 된 그에게 아주 특별한 사건이 생겼다. 한 월부 책장수가 찾아와 도스토예프스키전집을 내밀었다. 그는 겨울방학 내내 여섯 권의 전집에 빠졌다. 그는 당시의 감동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놀랐다. 그 작은 책 속에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숨을 쉬고 펄펄 살아있던 것이다. 그 작은 책 속에 그토록 가슴 아프고 기쁜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놀랍고도 놀라웠다. 책 속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을 나는 숨이 막히게 따라다녔던 것이다. 방학이 끝나고 집을 나서서 학교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내게 놀라웠다. 이상한 일도 다 있었다. 늘 보아왔던 강물이며, 빈 들판이며, 앞산이며, 느티나무며, 강물 속의 바위들이며, 마을의 가난한 집들이며,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 새로 보였던 것이다.(중략) 아! 저기 서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새로 보이면 그게 사랑이 아니던가, 나는 나도 몰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얻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느낌에 공감한다. 그렇다. 사물이 새롭게 보인다는 것은 그가 책으로 말미암아 문학적 깨달음을 얻었다는 증거이다. 안목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그는 1982년에 ‘창작과 비평’을 통하여 등단했으며 등단 2년 만에 첫 시집 '섬진강‘을 냈다. 그는 시인이 되려고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쓴 것도 아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하여 온갖 생각들을 일으키고 쓰러뜨렸으며 절망하고 도전하였다고 했다. 그 속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어느 날 시가 왔다고 말한다. 별것이 아닌 삶을 살기 위해 사람들은 사람이기를 버린다는 걸 깨달은 그는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세계에만 머리를 숙인다고 했다.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은 시작되었고 책을 따라다니며 글을 써온 그는 길고도 긴 인생의 길이 책속에 있음을 발견하였다.
소설가 김원우는 47년 김해시 진영읍에서 났다.
그는 만사에 철저히 무능해서 글쟁이가 되고 말았다고 떼를 쓴다. 약골이라 운동엔 젬병이요, 부끄러움 많고 손재주도 없을뿐더러 집안형편도 어디 내놓을 게 없었다고 엄살을 피우더니 그래도 책 읽는 장기는 있었다고 자랑한다. 그가 처음으로 재미있게 읽은 책은 김종래의 만화 ‘엄마 찾아 삼만 리’였다. 그는 중학시절에도 학교공부는 내팽개치고 남독의 세월을 만판 즐겼다. 심지어 대학에 진학해서도 무엇에 쫓기듯 읽을거리와 마냥 노닐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는 습관이 들었다. 한번 손에 잡힌 책은 끝까지 숙독으로 독파했다. 특히 자신에게 ‘읽히는 문장’을 찾아서 그 구체적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문맥을 쫓아가며 세독하고 탐독하였다.
그의 글쓰기에 대한 기억은 중학교 시절의 ‘위문편지’로 시작된다. 영화감상문 쓰기와 독후감 적기는 일기쓰기보다 더 요긴하고 재미있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 소질이 책읽기에서부터, 또 어떤 감상문을 자발적으로 기록해 비롯한 천성에 빚지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글쓰기는 지난한 작업이다. 어떤 장르의 글을 쓴다하더라도 무슨 내용을 어떤 어휘들로 단정해야 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이 구상(‘착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트나 잡기장에 메모를 해두거나 머릿속에다 어떤 상을 저장해두는 각자의 기량을 개발․연마할 수도 있다.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그 상이 어느 정도로 윤곽을 드러냈을 때, 기고(起稿)하게 되고 그 직전에 초조해서 손을 자주 씻는 강박 증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글을 제만의 특이한 가락도 없이 쉽게 써버리는 사람들, 다듬을 겨를도 없이 한정된 시간 안에 써냄으로써 높은 점수를 받으려는 요행심리, 남의 글은 한사코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제 글을 읽어주기만을 바라는 양산체제의 타자수들에게서 과연 정직한, 바른, 훌륭한 문맥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그는 일갈한다. 그러면서 그는 무잡한 글이, 무지몰각한 책이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세상을 나무란다.
시인 도종환은 글을 쓰는 이들에게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한 개인으로 돌아와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진솔하게 대답을 찾아보는 일은 문학이론서에 나오는 상식적 결론을 읽는 일보다 훨씬 생생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푸른 계곡물, 지평선 가득히 출렁이는 황금물결, 댐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물줄기, 이런 것들은 가슴 속에 그렇게 출렁이는 것들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댐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마음 깊은 곳에 쏟아놓고 싶었던 것들이 넘실대며 고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어느 날 문득 일상 속에 묻혀 사는 나를 다시 보게 만드는 사물, 자연현상, 일을 만나고 그것들이 그 일상과 적당한 거리를 만들게 하고, 그 거리에 서서 자신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만드는 것 그것이 글이라고 말한다.
“삶에서 받은 상처와 소외와 고통이 도리어 재산이 되는 분야는 많지 않다. 그러나 문학의 토양은 상처다. 상처가 스승이다. 결핍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고 내면 깊숙한 아픔이 시의 밭이다. 그 아픈 기억들을 아름다운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 장르가 문학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야말로 자기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의 아픔을 위로하는 의료행위인 것이다.”
그의 지론은 쾌도난마이다.
“감정의 덩어리 자체는 아직 글이 아니다. 그러나 감정이 여과과정을 거치면서 문학적 정서로 변화하고 포에지는 포엠으로 변한다. 격렬하거나 뜨겁거나 휘몰아치던 감정이 차분해지고 그 감정의 덩어리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 뒤에 행동하는 사람으로 바뀌어간다.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훈련을 통해 ‘감정에 이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면 나를 울게 하던 감정이 다른 사람을 울리는 힘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울림’인 것이다. 이른바 남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가 글 쓰는 사람을 존중하는 이유도 그들이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게 되면 우리의 눈은 대상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간파해 내는 눈을 갖게 된다. 내가 관심을 갖게 되는 대상 하나하나와 긴밀한 만남을 가지기 시작한다. 대상과 나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장미꽃이 나와 새로운 관계를 갖기 시작하는 장미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런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새로운 인생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이다.”
동화작가 서정오는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이야기를 써오다가 퇴직하여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글장이는 별종이 아니라고 운을 뗀다. 이 세상 어느 작가도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나아가 개나 소나 누구든 글을 쓰는 때가 바로 민주시대라고 말한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주장이다.
그가 글을 쓰게 된 까닭은 소설가 김원우와 어슷비슷하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거다. 힘이 없어 농사도 못 짓고 꾀가 없어 장사도 못한다. 손재주가 없으니 물건을 만들거나 고치는 일을 배우기 어렵고, 헤엄을 못 치니 물에 들어가 하는 일은 엄두조차 못 낸다. 말재주가 없어 남을 설득할 줄 모르고, 숫기가 없어 낯선 곳에 가면 몸부터 얼어붙는다. 형편이 이러하니 그저 글이나 쓸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그 참 장황하기도 하다. 그는 글을 쓰는 작가임에도 아랑곳없이 ‘창작의 고통’에 매질을 한다.
“글을 쓸 때 흘리는 땀이 아무리 진한들 농사꾼이 뙤약볕 아래 일하면서 흘린 땀만 하겠는가. 글을 쓸 때 드는 힘이 아무리 큰들 공사판에서 막노동꾼이 쓰는 힘만 하겠는가. 단돈 천원을 벌기 위해 굽은 등으로 종이상자 기득 실은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의 힘에 견주겠는가. 글을 쓸 때 느끼는 아픔이 아무리 모질다한들, 그 옛날 독립투사들이 일본헌병에게 끌려가 받은 고문의 아픔만 하겠는가. 아니 무엇보다도 1980년 5월 광주의 아픔만 하겠는가. 그런 땀과 힘과 아픔과 질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말이지, 작가가 스스로 창작의 고통 따위를 자꾸만 들먹이는 건 힘겹게 살아가는 다른 많은 이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부끄럽고 초라한 나를 돌아보게 하는 호된 꾸지람이다. 그는 계속해서 일침을 가한다. 이제는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농사꾼과 행상과 어부와 노동자가 글을 써야 한다는 거다. 공연히 어려운 말로 잰체하는 글이 아니라, 삶 속에서 절로 터져 나오는 자신의 느낌과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글이 온 세상에 강물처럼 넘쳐야 하며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글을 읽어야 한다고 사자후를 토한다.
그는 글을 쓰는 작가들의 역할을 ‘잠수함 속의 토끼’로 표현한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병들어 가는지, 어디서부터 허물어져 가는지를 날카로운 눈으로 살펴서 그것을 대중에게 두루 알려줘야 한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경계하고 경고하고 위험에 맞서 싸우는 일, 이것이 바로 작가가 할 일이다. 눈앞의 위험을 못 보고, 아니면 보고도 모른 체하고 먼 산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말놀음이나 즐기는 것은 작가가 할 일이 아니다. 대중들이 이해 못하는 어려운 한자말이나 서양말 몇 마디로 행세하는 것도 작가가 할 일이 아니다.”
김해의 어느 언덕배기에 곤달걀을 슬그머니 버린 기억이 괴로운 나는 그의 추상같은 작가론에 참담한 가슴을 뜯는다.
소설가 성석제는 1960년 경북 상주에서 나서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문학의 뿌리와 샘은 바로 ‘감동’이라고 전한다. 1986년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친구를 따라하다 보니 어어, 하는 새에 시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집안 별채에 특이하게도 책이 쌓여있는 방이 있었다. 그는 그 방에서 우연히 ‘흙손엄마’라는 동시집을 찾아냈다.
“내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흙손이다. 언제나 밭 매고 김매고 흙과 떨어지지 않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손은 흙처럼 거칠다. 흙처럼 메마르다. 흙처럼 볼품없고 푸석푸석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손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그는 동시를 읽고 쥐벼룩이 몰려오는 듯 싸아악,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 소리는 그의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감동으로 곤두서는 소리였다. 그는 바로 그때, 이후에 경험하게 된 수많은 감동의 맏형이 되는 체험을 하고 있었다. 그가 감동한 까닭은 문학이 가지고 있는 본질, 보편의 감동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감정과 감각에 그는 당황했다. 왜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눈꼬리가 시큰할까. 왜 침이 마르고 혀끝이 아릿할까. 그는 일어나 앉아서 다시 그 동시를 읽었다. 이번에는 아예 눈물이 나려고 했다고 한다. 나이가 두 자리 숫자인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눈물이. 그는 동시집을 책장에 꽂고 밖으로 나왔다.
시로 등단한 지 10여 년 만에 그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 그는 한동안 시인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문득 그는 소설을 쓸 수밖에 없게 된 근원적 일화를 발굴하였다. ‘모래밭’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출구가 없고 입구도 없는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깥세상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금지된 현실을 거부하고 입산금지의 산에 올라 바다를 보았다.
“……파도가 밀려와 그의 구두를 적셨다. 그의 양말을 적시고 발목을 덮쳤다. 문득 그의 몸은 가벼워졌고 또한 무거워졌다. 발목 아래가 모래로 변했던 것이다. 파도는 그의 발목과 함께 밀려갔다. 다시 파도가 밀려왔다. 그의 무릎 아래가 모래로 변했다. 그는 꿇어앉은 것처럼 보였으나 이미 무릎이 없었다. 그는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도가 밀려와 그의 배를 적시자 그는 모래밭에 파묻힌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가슴이 모래로 변했다. 마지막 숨을 쉬기 전,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모래밭은 자신처럼 산에서 뛰어내려온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그는 이 이야기를 생각하고 생각했다. 곱씹으면서 슬픔, 허무, 인간의 존재조건 같은 다양한 맛을 느꼈다. 고양된 시적 언어로 직격 당했을 때 받는 감동이 아니라 이야기로 잘 감싸여진 진실, 어쩌면 보편의 진리가 거기 있는 듯 느껴졌다고 했다. 도그마가 아닌 조용한 이야기, 그리고 진리가 어쩔 수 없이 설파된 뒤의 침묵이 아름다웠다고 털어놓았다.
시인이며 소설가인 신달자는 문학박사로 대학교수이기도 했다.
두 딸을 잃고 남아있는 네 딸 다음으로 그를 임신한 어머니는 출산 때 그가 딸이라는 걸 확인하자 산파가 갓 씻겨놓은 아이를 벌떡 일어나 발길로 걷어차 버렸다. 그는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1943년 5월이었다. 그는 중학교 때 서울에서 전학 온 남학생을 짝사랑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 멋진 편지를 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 무렵 우연히 아버지의 서랍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고는 심한 충격에 빠졌다. 그 일은 얼굴은 보이나 보이지 않는 인간의 얼굴을 찾는 마음의 내면읽기 곧 시를 찾아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나이 19세, 숙명여대 1학년 강의실에서 그는 시인 김남조 선생을 만났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머리를 자연스럽게 올리고 시선은 언제나 창밖으로, 음성은 조용한 매혹적인 분이었다. 그는 김남조 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당시 조교는 허영자 시인이었다. 대학시절에 그는 쟁쟁한 문학가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소설가 안수길, 정한모, 조연현 선생을 만났고 목월과 미당을 만났다. 그는 잠시 대학의 조교로 일하기도 했으나 시인의 길을 뒤엎고 평범한 아낙이 되었다. 그러나 그 길은 어둡고 캄캄한 고통의 터널이었다. 마침내 그는 병이 들었다. 언제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없었다. 그는 이대로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흔적 없이 날려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목월션생을 만나 그가 미친 듯 찾아 헤매던 그 알 수 없었던 무엇이 시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인간적 평화와 사회적 욕망을 반납하고 뜸부기처럼 습한 눈물 속에 젖어 살아가는 그 순간에도 시는 그의 안에서 병을 자처하고 소리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픈 날들을 회상 한다.
“사람들은 말했다. 너의 불행이 너의 시를 존재케 한다고.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어찌 시가, 문학이 인간의 불행을 담보로 주어지는 것이던가. 아니다 아니다. 나는 하느님께 대들었다. 적어도 신은 인간에게 그런 보상의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외치며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고 엄격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지상에서 내가 짚어야 할 지팡이는 내 의지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나와 약속했다. 결코 초라하거나 비겁하지 마라. 일어서라 일어서라 결코 포기하지 마라. 내 인생에 고개를 숙이기엔, 내 삶에 절망하기엔 나는 그때 너무 눈 시리도록 젊었다.”
그래서 그는 싸웠다. 코피를 터뜨리며 기어가는 삶을 살았지만 시를 쓰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으며 세상을 사랑하였다. 그랬다. 세상을 사랑하였다.
그렇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 그 자체이다.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의 긍지를 내 가슴에 담아본다.
안도현은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1984년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는 중학교 때에 화가를 꿈꾸는 미술반원이었다. 한 번은 교지에 들어갈 자잘한 컷을 그리는 일을 게을리 하다가 교지 제작 지도교사한테 귀싸대기를 얻어맞았다. 그는 미술반원이 된 것을 후회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보란 듯이 시를 써 교지에 발표하여 그 국어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할 작정을 했다. 당장 수백 편의 시를 읽고 ‘가을’이라는 시를 써서 투고했다. 그러나 그의 시는 교지에 실리지 않았다. 그는 적잖이 실망했던 듯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아예 문예반이 되었다. 그는 도광의 시인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2학년 때 드디어 선생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선생님은 그동안 그가 심혈을 기울여 창작한 시들에 난도질을 가하고 심지어 주살하기도 했다. 하얗게 밤을 새워가며 고치고 또 고치고 해서 들고 간 시가 무참하게 찢어졌다는 생각에 그는 그만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의 비참함이 없었다면 자신은 언어를 함부로 남발하거나 혹사시키는 언어의 난봉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한다. 시인이란 언어를 다스리면서도 언어로부터 다스림을 당하는 자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1980년의 계엄 사태에 처음으로 냉혹한 세상을 만났다고 한다. 학교 앞 언덕에서 친구와 소주 한잔 하다가 계엄군에게 교문 앞으로 끌려가 꿇어앉혀져 인정사정없이 얻어맞았다. 그는 비로소 꿈에서 깨어났다. 이제껏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치욕이 그의 이십 대 초반을 적시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이 세상에는 혼자 걸을 수 없는 길이 많다는 것을, 그가 꿈꾸는 문학도 골방에 앉아 끙끙댄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피해 가지 않고 ‘지금, 이곳’에서의 시를 쓰겠노라고 일찌감치 그 자신에게 약속했다. 스무 살의 철없이 팔팔한 문학청년에게 역사는 치열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을 그날 저녁에 가르쳐 주었다.
그의 첫 시집은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다. 80년대는 현실의 신명과 시의 신명이 일치하는 시기였다고 그는 말한다. 현실과 시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마치 기관차처럼 내달릴 수 있었다는 거다. 시가 예술성의 울타리를 넘어 탈선을 감행해도 용인을 해주던 시대가 끝나자 기관차도 기관사도 승객들도 모두 길을 잃고 망연히 철길 가에 주저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던 정태춘도 그렇게 말했었다. 불쑥 ‘북한강에서’가 듣고 싶다.
그는 자신에게 주문한다.
시에서 지나친 과장이나 엄살을 걷어낼 것, 너무 길게 큰소리로 떠들지 않을 것, 팔목에 힘을 빼고 발자국소리를 죽일 것, 세상을 망원경으로만 보지 말고 때로 현미경도 사용할 것, 시를 목적과 의도에 의해 끌고 가지 말고 시가 가자는 대로 그냥 따라갈 것, 시에다 언제나 힘주어 마침표를 찍으려고 욕심을 부리지 말 것, 시가 연과 행이 있는 양식이라는 점을 분명히 제고할 것….
그는 시하고 가슴과 손끝으로 함께 연애하기를 꿈꾼다. 문학은 여전히 외로운 자들의 몫이기에 외로움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외로움의 거름을 먹지 않고 큰 문학이 있다면 그 뿌리를 의심해 봐야 한다고 그는 단언한다. 글을 쓰는 일은 외롭기 때문에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른다는.
소설가 안정효는 1941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정력적인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 ‘하얀전쟁’과 ‘은마는 오지 않는다’, ‘착각’ 등은 영어, 독일어, 일본어, 덴마크어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그가 ‘책을 읽다가 글을 쓰게 된 사연’은 정리하기가 녹록치 않다.
“나는 안데스 산맥을 걸어 내려온 비행사의 얘기를 내손으로 써보고 싶었다. 나는 종교와 정체성 때문에 고뇌하는 스티븐 디달러스나 성장의 해탈을 이루어나가는 홀든 클필드 같은 인물을 창조해내고 싶었다. 나는 산티아고 노인이 바다에 나가서 겪는 시련을, 그리고 패배를 통해서 승리를 맛보는 상황과 순간을 나의 상상력만 가지고 마음의 허공에 그려보고 싶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 독서광이 되었다. 미술을 생각하던 학생이 영문학도가 된 탓이었다. 그는 여름박학을 이용하여 날마다 도서관에 가 하루에 두어 권씩, 그렇게 50일 동안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교내 도서관의 장서가 부족하여 영어로 된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훗날 창작과 번역에 자양분이 되었다. 그의 독서는 고전의 울타리를 벗어나 신작을 섭렵하는 단계로 발전해 나갔다. 책읽기가 그의 인생을 이끌어간 그 방향은 감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앙투안 드 생텍쥐베리의 ‘야간비행’과 ‘인간의 대지’를 읽고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안데스 산맥에 추락한 조종사가 아내에 대한 의무를 생각하며 그 험난한 길을 걸어 내려오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는 얘기를 읽고는 인생이 늘 주변에서 목격하는 초라한 일상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존 스타인벡의 첫 소설 ‘황금배’를 읽고는 전설의 환상에 도취되어 몽환적 기분에 젖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문학작품들이 그에게 깊고 격렬한 감동을, 무한 감동을 주었던가. 영원히 묻혀버리지 않고 내면에서 살아 숨 쉬게 될 감동을. 해면처럼 끊임없이 지식을 발아들이고 섭취하는 틈틈이 그는 책으로부터 모아들인 그 지식을 발효시킨 다음 그것을 촉매로 삼아 그 자신의 영혼을 키우는 되새김질을 하기 위해 가끔 반추의 사간을 가졌다.
그는 쓰고 싶은 마음뿐이었지, 어디엔가 응모하고 당선되어 그의 작품을 남들에게 보여준다는 과정은 설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쓰고 밤낮으로 썼다. 정말로 행복했다고 한다. 서예라도 치듯, 펜촉에 잉크를 듬뿍 찍어 검처럼 치켜든 다음 원고지를 한 칸 한 칸 채워나가던 모든 순간이 그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책을 통한 지식의 습득과 지칠 줄 모르는 창작활동은 안정효 작가에게는 영원한 현재진행이다.
소설가 우애령은 내겐 낯선 이름이다. 그는 이화여대에서 독일문학을 전공하고 연세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단편으로 등단했다. 이듬해 여성동아에 장편 ‘트르먼스버그로 가는 길’이 당선되었다 .그의 나이 48세 때의 일이다. 프랑수아즈 사강 같은 천재는 소녀시절 카페에 앉아 ‘슬픔이여 안녕’을 썼고 도스토예프스키나 발자크 같은 작가는 빚쟁이를 문 앞에 세워두고도 그렇게 불후의 명작을 썼다는데 자신은 40대 후반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니 영 가망 없는 일인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는 소설 창작반에서 공부하여 소설가가 되었다.
만주 목단강 가에서 세 아들을 두고 만삭이 된 여인은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태중의 아기를 중국인에게 입양하기로 한다. 그의 남편은 일본군에 끌려가 전사했다. 그러다 갑자기 조국이 해방 되고 팔로군이 들어오게 되자 아기를 낳으면 입양키로 했던 중국인 식구들은 죽고 도망가고 풍비박산이 되고 말았다. 그는 몸을 풀기만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 사리원으로 가리라 하고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아기를 낳으면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검게 탄 한 남자가 나타났다. 전사했다던 남편이었다. 기쁨도 잠시, 그들은 길을 재촉하여 함경도 고원에 이르렀다. 어렵사리 여관을 얻어들어 그는 몸을 풀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가 바로 우애령이다.
나는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감동스럽다. 어쩌면 그는 소설가의 운명을 타고난 듯하다. 임진강에 다다라 뗏목을 구해 여러 사람이 함께 도강할 때에 우애령 그 갓난아기는 울지 않았다. 달도 뜨지 않고 별만 총총한 밤, 임진강을 건너는 아기는 눈을 뜨고 골똘히 별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우애령은 그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임진강을 건너는 얼기설기 엮은 뗏목 위에서 온갖 생각에 사로잡힌 어머니 품에 안겨 있던 갓난아기인 그 자신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고 한다. 찰브락거리는 물결소리 속에서 아기는 무슨 생각을 하며 무한한 어둠과 별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자유를 찾아 떠나는 뗏목이 정말 그 지점에 갈 수 있었으리라고 아기는 믿고 있었을까.
작가 우애령에게 가장 감동 깊은 책은 그 어머니의 소설 같은 삶이었겠구나하는 생각에 잠긴다. 나는 그의 작품을 대하기 전에 그날 뗏목이 건너왔던 임진강의 밤을 보고 싶다.
‘내 인생의 글쓰기’는 (주)나남에서 출간된 아담한 203쪽 짜리 책이다.
수년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펼친 어머니․청소년 독서 강연회 연사들의 글을 묶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한 그들은 독자에게 자신이 겪은 문학과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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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1-08-08 2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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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동도를 걷고 있는 사람으서 다른이의 문학인생을 적나라하게 피력한 글을 통해 문학인생을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문학은 결국 자기가 체험한 바를 통하여 사람이 어떻게 사람답게 살것인가 하는, 인생의 의미를 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기 결핍과 상처의 치유 과정을 통해 무엇을 남길수 있다는 건 또한 문학의 미덕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좋은 정보도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도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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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명옥 |
11-08-10 0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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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란 인생 그 자체임을 새삼 느끼며, 좋은 공부라고 감사하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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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1-08-14 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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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좋은 자료 함께 읽습니다. 문학도들의 인생이 파헤쳐진다는 것은 어쩌면 나름 자신의 진실을 독자에게 고백하는 일이겠지요. 마치 수필의 한 작품처럼~
이렇게 방대한 글을 쓰시기까지 많은 노고가 있음을 봅니다. 더분에 많은 걸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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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1-08-14 2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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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삼복 더위를 치열한 독서로 보내셨군요.
선생님의 '내 인생의 글쓰기'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남은 더위에도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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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1-08-16 07: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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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모름지기 글쓰는 사람들이 다시 한번 느껴야하는 좌우명같은 글이군요. 더불어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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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1-08-17 0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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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하는 사람이 꼭 읽어야 할 글이로구나 하며 고마와 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절실하게 시작하는 글을 나는 너무 쉽게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입니다.
옴니버스식의 다체로운 글이라서 더욱 감명 깊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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