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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희순 |
날짜 : 10-11-01 17:41
조회 :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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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오누이가 천년 묵은 백여우에게 쫓기면서 하얀 병과 파란병과 빨간 병을 차례로 던져보지만 가시덤불에 혼이 나고 파란 강물에 막히고 큰 불길에 그을리면서도 끝내 쫓아온 백여우한테 잡아먹힐 절체절명의 순간, 옥황상제께서 급파한 세 발 달린 개 ‘삼족구(三足拘)’가 백여우를 물어 죽여 오누이를 구한다는 어머니의 옛 이야기는 만날 들어도 재미있었다.
그러기에 개들은 상제님이 하사하신 귀한 다리에 오줌방울이 튈까봐 꼭 그 뒷다리를 들고 쉬를 한다고 한다. 요즘 한창 인기절정을 달리고 있는 어느 사극에는 ‘삼족오(三足烏)’가 등장하는데 삼족구와는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개’하면 우선 충직함이 떠오른다. 온몸에 물을 묻혀 불붙은 마른 풀밭을 구르고 굴러 불을 꺼서 주인을 구하고 자신은 타죽은 전북의 오수개 이야기, 수백리길을 되짚어 주인을 찾아왔다는 기이한 진돗개 이야기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대체 이들의 ‘충성심’은 단순한 습성의 산물일까, 사람과 엇비슷한 지적작용에 의한 의지력의 발로일까?
나는 뚝별나게 개를 좋아한다. 그러나 무슨 전문적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요 더구나 고상한 애견가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썩 괜찮은 개를 길러 본 일도 없으려니와 훈련을 시켜본 적도 없다. 그저 ‘똥개’보다는 조금 나은 개와 무덤덤하게 지낼 뿐이었다. 내로 더불어 사는 개들은 ‘자유’가 기본이라 목줄이나 사슬을 몰랐다. 우리 집에 살았던 개들은 단언컨대 사람만큼이나 ‘완전한 자유’를 누렸다.
‘다롱이’도 그랬다. 녀석은 거실이며 주방을 무시로 드나들면서 마음 내키면 마을을 가기도 하고 재수가 좋아 ‘연인’이라도 만나면 며칠이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럴 땐 내가 녀석을 찾아 나서야 했다. 녀석은 자동차가 넘치는 한길에서 차를 피해 다니는 법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하면 민첩하게 따라 건넌다. 제 주인이 대중목욕탕으로 모습을 감추면 다시 나올 때까지 출입문 곁에 웅크리고 앉아 바보처럼 한 시간을 기다린다. 온갖 자동차의 굉음 속에서도 주인의 자동차 소리를 백 보의 거리에서 신통하게 알아챘다. 이층에서 웬 인간이 기르는 목줄도 없는 잡견이 사람들을 위협하고 걸핏하면 짖어대니 아래층 사람들은 말할 나위없고 이웃의 원성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밤, 녀석이 아래층에 숨어들어온 도둑을 내쫓는 광경을 목격한 뒤로 근방에 도둑맞는 일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다롱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녀석은 진정한 자유를 누렸지만 결코 방종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제집에 가서 자고 주인이 외출하면서 집에 있으라면 복종하여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집을 지키고 있었다. 누가 찾아오면 놈은 방문자를 골라가면서 짖었다. 자주 오는 사람일지라도 내 생각에 좀 찜찜하고 마땅찮은 사람이다 싶으면 녀석은 틀림없이 짖었다. 짖지 말라고 나무라도 소용이 없다. 그렇게 한 오년이 지나자 녀석은 주인의 말을 웬만큼 알아들었다. 따로 훈련을 시키지 않았건만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왔다. 자라면 자고 앉으라면 앉고 누우라면 눕는다.
녀석은 아내와 내게 아주 특별한 존재이기는 하다. 겨우 강아지 티를 벗었을 무렵 봉고차에 치여 가슴이 쩍 벌어지는 중상을 당한 채 의식을 잃은 적이 있었다. 동물병원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아내가 하도 애걸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누더기를 덧대어 꿰매듯 아무렇게나 수십 바늘을 꿰매주었다. 아내는 햇볕이 잘 드는 장독대 앞에 ‘중환자실’을 마련하고 ‘식물 개’나 다름없는 녀석에게 매일 주사를 놓고 상처를 소독해주었다. 나는 그런 아내를 한사코 말렸다. 참으로 미련하고 가망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정확히 엿새 만에 꿈질했다. 사람이 그렇게 살아났다면 대단한 기적이라며 한동안 떠들썩했으리라. 그렇게 구사일생하자 녀석은 완전한 내 가족이 되었다. 다롱이는 우리와 꼭 십년을 함께 살다가 미쳐 날뛰는 이웃집 거대한 도사견에 맞서 집을 지키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다롱이는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대문간에 들어섰을 때 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두 눈을 부릅뜬 채 대문간을 노려보고 있던 모습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그 참담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나는 그의 주검을 거두고 눈을 감겨 텃밭 감나무 밑에 묻었다. 작은 묘비라도 세워 주리라 다짐했건만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졸지에 십년지기를 잃어버린 아내의 슬픔은 너무 커서 곁에서 그냥 지켜보기조차 힘겨웠다. 그야말로 그는 우리와 ‘한 식구’였으니 아내의 식음 전폐도 넉넉히 이해할 만했다. 아내는 며칠 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내는 눈물을 훔치며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겠노라 스스로 철석같이 다짐하였다. 허나 지금 마당이 넓은 우리 집엔 개 일곱 마리가 천방지축이니 한 마디로 ‘개판’일 따름이다.
오직 사람만이 오행(五行)을 품수(稟受)했다는데 다롱이는 진정 사람이 되고 싶어 최후의 순간까지 그토록 주인에게 충성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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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0-11-01 1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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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선생께서 아홉편의 작품을 올리셨군요.
앞의 6-7편은 이미 읽었고, 새로운 작품은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글의 주제가 뚜렸하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있어 좋았습니다.
특히 혼불이야기는 저도 체험한바가 있어서 공감이 갑니다. 남자 혼불은
꼬리가 날리고 여자 혼불은 꼬리가 없다는데 전에 제가 본것은 꼬리가
달려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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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0-11-15 2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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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필집을 상재하신다니
게으름에 묻혀 사는 후학은 몸둘 바를 모릅니다.
생각을 바꾸어 열심히 써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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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행원 |
10-11-09 1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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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글이 재미있습니다.
-개들은 상제님이 하사하신 귀한 다리에 오줌방울이 튈까봐 꼭 그 뒷다리를 들고 쉬를 한다고 한다.- 개가 다리를 들고 쉬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하하.. 시원찮은 남자는 전봇대에 가서 다리를 어중간하게 버티고 쉬를 하는데...ㅎㅎ..
내가 쓴 拙詩가 생각납니다.
개
개를
잘 지켜보아라
꼬리말이다
백 마디 말보다
개의
꼬리를 보아라
충성과
친절과
즐거움이
개의
꼬리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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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0-11-15 2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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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시에 문외한인지라 시 앞에 서기만 하면 주눅이 들고맙니다.
그러나 수필가도 시나 소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나아가
창작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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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문 |
10-11-11 16: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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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선생님의 여러 글 잘 읽었습니다.
무릇 보고 느끼는 감성, 그것을 다시 글로서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선택받은 능력이 곧 예술로 승화된다는 생각을하며 선생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항시 건강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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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0-11-15 2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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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반갑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글을 대할 때마다 절로 숙연해집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깊은 인생관이 우러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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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0-11-13 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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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좋은글 쓰시는 열정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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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0-11-15 2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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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처럼 후학을 격려해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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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0-11-14 1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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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 저도 개판을 좋아합니다. 저도 그렇게 개 일곱마리를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 생활이라 개판 만들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저도 한 때 광주교도소 관사생활을 할때 개판으로 개 여러마리를 기르던 생각이 났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그렇게 마당넓은 집에서 개 뿐아니라 고양이도 병아리도 그렇게 동물농장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꼭 그 꿈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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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0-11-15 2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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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도 개를 좋아하시는군요.
지금도 떠나온 옛 집에는 개 다섯 마리가 있어
걱정입니다.
선생님의 꿈이 꼭 이루어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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