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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만나자는 말은 없어도
행여나 오시려나 그리는 마음
님과 함께 노래하던 푸른 언덕은
새봄을 기다리는 순정이라오

다시 봄이 왔다. 꽃샘추위가 극성을 부려도 봄은 봄이다. 엊그제 몇몇 친지들과 남산길을 걸으면서 보니 개나리꽃이 나목들 사이에 숨어서 조심조심 피어나고, 조팝꽃 새싹은 회초리같은 앙상한 가지끝에 포릇포릇 깜찍한 싹을 내어밀고 있었다. 메타세콰이어의 헌칠한 큰 키에도 봄바람이 휘휘 불어와 얼마 안 있어 하늘로 뻗어올라간 가지에 뽀족뾰족 푸른 기운을 선보일 듯 싶었다.

우리는 봄노래를 흥얼거리며 남산타워까지 올라갔다. 앞에 가던 한 사람이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서 즐거운 멜로디는 이어지게 되었다. 숨이 찼지만 노래를 멈출 수는 없었다. 얼마만에 불러보는 노래란 말인가. 얼마만에 남산 걷기모임에 동참했단 말인가. 근래들어 드물게 느껴보는 자유로움이었다.

남산타워에는 가족단위의 시티투어 관광객들로 붐볐다. 우리는 남산타워에 오르기를 멈추고 거기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갔다가 처음 출발장소인 해오름 극장앞으로 모였다. 천천히 걸은 때문에 시간은 무려 3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신나고 상쾌하였다. 발가락은 좀 아파도 옷깃 사이로 또는 머리칼 속속들이 봄바람이 파고들어와 그 기분은 남산의 케이블카 높이만큼 날아올랐다.

남산 실개천 공사가 한창이어서 중장비 등 트럭들이 오가므로 매우 소란스럽고 복잡했다. 우리는 봄노래를 흥얼거리며 남산길을 걷고 있는데 남산 실개천 공사에 동원된 근로자들은 봄바람에 얼굴이 벌겋게 익어 피곤한 모습들이었다.  분명 봄은 다가오고 있고 이미 푸른 빛을 띠고 나무와 숲과 메마른 풀잎에 내려앉아 있음에도 미쳐 봄을 느끼지 못하거나 봄소식에 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 쯤에서 걷기를 멈추고 동국대학 캠퍼스가 내려다보이는 지름길로 남산을 내려왔다. 동국대 지하철역 근처에서 먼저 간 친구들이 붕어빵을 한 봉지 샀다. 방금 구워낸 터라 따끈따끈한 것이 맛도 근사했다. 열 서너명의 친구들이 길거리에 선 채로 붕어빵을 맛나게 먹었다. 어린아이들처럼 걱정근심없는 표정들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가슴이 설렌다. 올 봄도 예외는 아니다. 가슴이 설렌다는 것은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의미일 수 있다. 특별히 올봄에는 내가 이루어야 하는 꿈들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유불선을 아우르는 작품에 대한 과제가 그것이다. 그 꿈을 위해서 나는 몇 달에 걸쳐 필요한 자료를 섭렵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해오는 중이다.

봄이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마을 젊은 처자 꽃따러 가거든
꽃만 말고 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원조 왕족발집으로 가는 붐비는 골목에서도 춘흥에 겨운 친구들의 봄노래는 그칠 줄을 몰랐다. 꿈을 품고 있다는 것은 곧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나는 푸르른 봄이 되어 생명을 품은 봄 그 자체로서 살고 싶다. 내가 가는 길엔 언제나 봄이 함께 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