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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방주 |
날짜 : 10-01-10 19:37
조회 : 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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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선생님이 오시지 않는 날은 옆 반 담임이자 남자인 홍선생님이 오셔서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반은 3년간 계속 여선생님이 담임인데다가 꿀맛같은 이야기 때문에 홍선생님을 기다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홍선생님의 이야기 중 아직도 기억에 살아있는 것은 '호랑이와 곶감’이다.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옛날엔 3학년인 우리들에도 신기하기만 했다. 호랑이 등에 올라앉은 도둑의 놀란 가슴을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했고, 맛있는 곶감도 모르고 도둑을 백수(百獸)의 어른인 자기보다도 더 무서운 ‘곶감’으로 아는 바보 같은 호랑이 대목에서는 손뼉을 치면서 재미있어 했다.
나는 해가 지고 소쩍새만 울어도 대문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겁쟁이였다. 어두워지기만 하면 뒷동산에서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내려오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나오는 호랑이는 아주 무서울 뿐아니라, 울타리 대나무밭 같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 이후 호랑이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학교에서 동화책을 빌려 읽으면서 호랑이는 무섭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순진하기도 하고, 토끼의 속임수에도 넘어갈 정도로 어리석기도 하며, 효성스럽기도 하고, 은혜를 갚을 줄도 아는 의리 있는 호랑이로 등장했다. 이런 이야기는,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함께하는 매우 친근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가져야 할 윤리적 덕목을 호랑이를 통해서 드러낸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도 한다.
고등학교 때는 호랑이는 이미 우리 산야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늦은 하굣길도 두렵지 않았다. 고 3 때 외딴집으로 가려면 돌아야 하는 서너 개의 모롱이도 호랑이 때문에 무섭지는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태백과 소백이 갈리는 백두대간 고치령 아래 험준한 골짜기에 있는 작은 학교에 부임했다. 봄이 되면 마을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산나물을 뜯으러 산으로 들어간 마을 사람이 며칠 째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발목과 머리만 발견되었다고도 했다. 누구는 멧돼지의 소행이라 하고, 누구는 잔혹한 무장공비가 나타났다고도 하고, 누구는 큰짐승의 행위라고도 했다. 장에 갔다가 밤에 고치령을 넘어 돌아오다가 자동차 불빛처럼 커다란 불빛이 기슭으로 올라가는 것을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나는 골짜기에서 멧돼지를 만나기는 했지만, 호랑이의 실체는 보지 못했다. 결국 한밤중에도 혼자 고치령 60 리길을 넘을 수 있을 만큼 담대해졌다.
한 이태 전에는 백두대간을 몇 구간을 따라 다닌 적이 있다. 어느 가을, 해발 1,100m에서 1,400m 사이의 등마루를 아홉 시간쯤 걸었다. 그 때 산등성이를 굴삭기로 파헤친 것처럼 마구 일구어 놓은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한 번도 현장을 보지 못했으면서도 그것을 멧돼지의 짓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래서 때로 두려움 없이 한둔을 하기도 한다. 한반도에 호랑이는 이미 없어졌다고들 믿으니까.
경인년 새해를 맞아 미디어 매체들의 화두로 호랑이가 등장하였다. 모두 호랑이의 신령스러움이나 속성에 비추어 한해를 열심히 살자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도 눈에 띠는 기사를 발견했다. 이미 멸종됐다던 한국호랑이(고려범)가 살아 있다는 반가운 기사였다. 나는 한국호랑이보호협회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단체의 보고에 의하면 백두대간에만 한 열 마리쯤 살아 있다는 것이다. 발자국이나, 먹이의 흔적, 배설물 등으로 추정한 결과라고 한다. 강원도 태백에는 몇 마리, 경상북도에는 몇 마리 하면서 계산해 내는 것으로 보아 헛말은 아닐 것이다.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산 아래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보면, 바위 위에 낙락장송과 어울려 늠름하게 앉아 있는 호랑이의 모습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호랑이의 생존을 그 발자국만 가지고 추정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 있다’는 말이 잦으면 살아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보았다는 사람이 많은데 모두가 거짓은 아닐 것이다.
한국호랑이가 멸종 위기까지 갔던 비극은 일제 정호군(征虎軍)의 마구잡이식 사냥에 의해서라고 한다. 산의 정기를 끊어 놓는다고 산마루에 쇠말뚝을 박은 것처럼 겨레의 얼을 짓밟는 마음으로 호랑이를 정벌한 것이다. 경인년 세밑에 살아있는 호랑이 소식보다 더 흥미로운 낭보가 있었다. UAE의 400억 달러 원자력발전 건설 수주 소식이 그것이다. 한국호랑이가 살아나 도리어 정호군(征虎軍)을 향해 ‘으르렁―’하고 포효하는 꿈을 꾸게 하는 소식이었다.
호랑이는 한국의 또 다른 상징이다. 호랑이가 살아 있다는 것은 한국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곧 한국의 정신이 살아 있는 것이다. 이참에‘한국호랑이가 살아있다’는 것을 믿으면, 살아 있는 호랑이가 풍비박산된 겨레의 마음의 구심점이라도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한국호랑이는 살아 있다. 초등학교 때 이야기로만 듣던 호랑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누비고 있다. 믿자. 아니 믿어야 한다. 새해에는 살아 있는 호랑의 용맹과 패기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2010. 0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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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0-01-10 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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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늘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건 나대용장관이 건조하여 충무공이 왜적을 물리쳤다는 거북선과, 한국산 호랑이의 정체 입니다.
얼마전 텔레비전을 보니 한국산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했다는 사람과 10년 넘도록 호랑이를 찾아 나선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고 있더군요.
거북선도 경상남도에서 꾸준히 찾고 있는데, 둘다 실체나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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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11 2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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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회장님 안녕하세요.
거북선, 직지, 삼대목
정말 우리가 찾아야 할 것들은 참으로 많아요.
그러나 언젠가는 나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 훈민정음도 찾았고 동국정운도 찾았고 월인석보도 찾았거든요. 백두대간에서 어느날 호랑이를 만날 수 있겠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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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0-01-10 2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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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호랑이 띠니 호랑이처럼 그렇게 포효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기세 등등하게 으르렁! 산천이 떠나가도록 그렇게 살아봅시다. 경인년 한해가 정말로 도악하는 한 해 꿈을 이루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호랑이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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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11 2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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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전 회장님 안녕하세요?
건강은 좋으신지요? 비호 같은 한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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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0-01-10 2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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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새해에 호랑이 이야기가 제격입니다.
한국 호랑이가 정말 나타났으면 합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간절히 소망하면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싶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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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11 2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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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국호랑이는 살아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도 백두대간에서 지름 10cm정도 되는 발자국을 발견했었거든요. 눈위에 찍힌 자국을 보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우리 겨레가 살아 있는 한 호랑이도 살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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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자 |
10-01-10 2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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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카페나 인터넷 홈페이지마다 용맹스런 호랑이가 우리 나라를 지키듯 용맹스러운 눈빛이 빛나네요. 이방주 선생님께서도 힘있고 기운찬 호랑이이야기를 쓰셨네요. 저도 힘이 샘솟는것 같습니다. 한국의 호랑이는 분명히 살아 있고 말고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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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11 2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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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호랑이처럼 올해는 저도 더 건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소망을 담아 이글을 썼습니다. 어른들 앞에서 제 건강 운운하기가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작년 한 해는 최악의 한해였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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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10-01-11 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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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정말 호랑이가 불쑥 나타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담아가서 널리 알려도 괜찮겠지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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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11 2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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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선생님
새해에는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빌겠습니다.
저도 올해는 눈 쌓인 산을 오르면서 백호를 만날 것만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 주신다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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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0-01-11 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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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생님의 말씀대로 우리나라에만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호랑이에 대한 전설, 그리고 호랑이를 추적하는
프로그램들에 매우 흥미를 느낍니다.
호랑이의 기상을 우리민족의 정기에 접목시키고 싶은
그런 점도 있겠지요, 아무튼 금년에는 호랑이가 태백준령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낭보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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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11 2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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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철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나라에 호랑이에 대한 전설이나 민담이 많은 것은 그 만큼 우리 나라에 호랑이가 많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리고 호랑이를 신령시하고 호랑이가 그렇게 순진하고 착하기를 소망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우리 겨레의 정신이 살아 있는 것처럼 호랑이도 백두대간에 살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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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명화 |
10-01-13 1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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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띠'라서인지 이 선생님의 글에 흥미가 짙어지네요.
옛날 얘기에 등장하는 호랑이가 많다보니 '호랑이'하면 무서움의 연상이 아니라
어떤 수호신 같은 친근함으로 다가 옵니다. 민족의 기상이요. 우리들의 정신적 수호신인
호랑이, 거기다 올해는 '백호해'라고 하니 그 의미가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싱겁게 느껴질만큼 훌쩍 크 키의 이방주 선생님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자상한 선생님일 것 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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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13 1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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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민족은 실제로 호랑이를 무섭게만 생각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옛날 이야기를 보면 친근하고 수호신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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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호 |
10-01-13 1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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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해에 호랑이 이야기가 퍽 재미 있네요.
언젠가 인적 드문 뒷 산에서 이상한 짐승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살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깊숙한 산에 소 발자국이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다가 좀 지나서야 싸움 소 훈련 때문이란 것을 알고 모든 의문을 푼 일이 있지만, 언젠가는 호랑이 발자국도 찾을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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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0-01-13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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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백두대간을 걷다가 고양이 발자국 같은데 지름이 거의 10cm는 되는 발자국이 눈 위에 찍힌 것을 보았습니다. 골짜기 염소 방목장 부근이었는데 그 때는 뭐 이런 큰 발자국이 있나하고 무심히 지났는데 신문 보도를 읽으니 한편 반갑기도 하고 한편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그래도 한국호랑이가 살아 있다면 희소식이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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