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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원명화 |
날짜 : 09-08-22 08:57
조회 :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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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공간의 사람들
박 원명화
생각도 감정도 없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먼저 메일을 확인하고 내 카페로 들어간다. 간밤에 낙서하듯 써놓은 글 몇 줄을 올려놓고 동우회카페로 이동한다. 카페에 들어가면 먼저 ‘방가방가’ 인사부터하고 바로 좋아하는 방문을 연다. 제목부터 살펴보다가 눈길을 끄는 게 있으면 들어가 본다. 좋은 글에는 역시 영상과 음악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있다. 글만 보는 것보다 음악이 곁들어 있으니 분위기도 다르고 전해오는 정감도 다르다.
그때 대화창이 열렸다.
“방가 방가”
“............. ”
“꾸벅, 인사 받았음 인사 주셔야징요”
“..............”
처음부터 들이대는 걸 보니 철부지임에 틀림없다. 벌건 대낮에 채팅이라, 이 시간에 무턱대고 수작부리는 걸 보면 아마도 할 일 없는 심심풀이 땅콩 족이 분명하다. 대꾸에 관계없이 저쪽에서 보내는 일방적인 메시지만 둥둥 떠다닌다.
“죄송합니다. 학생인가 싶어 은어 한번 써봤습니다. 답 줄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웬 내숭! 갑자기 점잖아졌다. 아이디가 ‘요들송’인걸 보면 20대 안팎의 사람임에 틀림없다. 학생일까? 건달일까? 아니면 노래 잘 부르는 사람?
“안녕하세요?”
자판에 인사말을 두들겨 본다. 상대가 반색을 하며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한다. 40대의 대한민국 건장한 남자로 회사 사무실에서 잠시 짬이 나 카페에 들어왔다고 한다. 일단 소개를 받았으니 그쪽도 소개를 하는 게 예의가 아니냐며 따지듯 재촉한다.
“저요? 집에서 설거지하고, 반찬 만들고, 다 쓴 치약 껍질 끝까지 내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쓰는 대한민국 알뜰 주부인데요.”
“알뜰주부! 좋지요. 가을 좋아하세요?”
“가을 보다는 시를 더 좋아합니다.”
그의 의도에 이끌려 잠시 이야길 주고 받다보니 멋쩍은 생각이 든다. 그만 끝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뿔싸! 그는 이미 내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던 듯싶었다.
“누님이시네여. 잠깐 놀아주고 갑니다. 꾸벅”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아마도 오고 간 말에서 눈치를 챈 것 같다. 순수한 우리말을 문자 그대로 옮기는 건 나 같은 ‘원시시대 사람’ 이나 하는 짓이다. 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어 가급적 대화창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는데, 어이없게 또 당한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이른바 쉰 세대와 신세대의 차이는 바로 언어에서부터 비롯된다. 언어 자체가 다르지만 그것도 20대, 30대, 40대가 다르다. 그들이 표현하는 비속어나 은어들은 외래어보다 낯설고 알아듣기도 어렵다. 아예 의사소통이 안 되기도 하며 나이차가 심할수록 더하다. 젊은 사람들일수록 컴퓨터에서 떠도는 인터넷 언어는 말 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에서도 줄임말이나 은어 등의 사용하는 빈도가 매우 높다.
한 예를 보면
ㅎㅇ=하이/ 안녕하3=안녕하세요/ 방가방가=반갑습니다./ ㅋ ㅋ=큭큭큭,킥 킥킥,/ 초딩=초보/ ㅎㅇ 아~초딩이군/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의 줄임말./ 메롱스럽다=난감하다, 뻘쭘하다, 어색 하다, 우울하다 등의 의미/ 무지개매너=‘무지 + 개매너’라는 뜻/ 십장생= 십대도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훈 남=못생겼지만 정이 가는 남자/ 볼매=볼수록 매력 있다는 뜻/ 갈비=갈수록 비호감/ 디비=청소년들이 어른의 눈을 피해 만든 언어로 담배를 가리키는 말/ 안구웰빙=잘생긴 사람들을 보는 눈요기 등등.
한마디의 좋은 언어는 향기 있는 꽃송이 같지만 독을 품어내는 언어는 상대의 마음을 언짢게 한다. 물론 나 역시도 가까운 친구를 만났을 때 말과 행동의 일치를 이루지 못해 오해를 사기도 한다. 부끄럽고 반성하는 반복의 일상들을 고쳐야지 하면서도 몸에 배인 습관을 쉽게 고치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시간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지내다 보니 어느덧 비속어-은어에 물들어 가는 나를 발견한다. 그때마다 스스로 놀라 뒤늦게 지우고, 삭제하느라 허둥대곤 한다.
컴퓨터는 인간미, 흙냄새, 따스한 정이 존재하지 않고 추상적인 지식과 정보의 바다만 출렁대는 가상공간에 불과하다. 삶의 실존도 허상에 빠져 살다보면 그것이 마치 현실처럼 착각하게 된다. 더러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며 심심을 면하게도 하지만 그 보다는 나의 정체성을 부풀어 주는데 일조하고 있는 시간을 투자이기도 한다. 돈이 많아 내 할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때, 나의 존재가 불필요하듯 컴퓨터가 찾아주는 편리함에 길들이다보니 내 머리에 담아야 할 것들을 점점 기억하지 않게 된다. 세종대왕께서 애써 만들어 주신 순수한 한글의 이탈과 파괴를 언제까지 방치하여 둘 것인가? 정보화 시대, 컴퓨터로 일하고 컴퓨터를 더 믿는 세상,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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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08-22 1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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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명화 사무국장님 저도 컴퓨터 켜면 메일 확인하고 또 우리 한국수필작가회 카페 들러서 새글이 올라오나 보고 또 고향카페를 비롯해서 트로트 카페 등등 전전하는데 요새는 카페에서 바로 채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장치가 되어있어서 본의 아니게 대화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요. 그래도 정감이 오가는 대화는 좋은 것 같아요. 그대신 타자를 익숙하게 대화하는 속도와 맞먹게 해야 대화가 됩니다. 독수리 타법으로는 힘들지요. 상대가 갑갑해 하니깐요.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에피소드가 참 많지요. 특히나 대명 때문에 빚어지는 일들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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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09-08-24 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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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명화 선생님, 채팅도 다 하시고 신세대 맞으시네요. ㅎㅎ...
사이버 세계는 이미 제7대륙이라고 하니 무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만
아직 초보 수준이라 편안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작가회 홈페이지에는 능숙한 분들이 많아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이번 여름 뜨거운 더위에 행사 이끌고 봉사하느라 수고가 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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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08-28 04: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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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시는 쉰세대의 열정!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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