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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09-08-07 20:56
조회 :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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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
박 영 보
엄마는 나를 왜 이런 델 데리고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만일 세 살 된 언니만큼만 말을 할 수 있었더라도 “엄마 빨리 집에 가자”고 졸라댈 수도 있었겠지요. 네 살 된 오빠만큼만 걸음마를 할 수만 있었더라도 유모차에서 뛰쳐나와 도망이라도 칠 수 있었겠고 요. 설령 걸음마를 할 수 있었더라도 양 어깨와 다리의 가랑이 사이까지 옭혀 묶여있는 안전벨트 때문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오직 몸을 비틀어대며 엄마에게 떼를 쓰고 우는 일일 수 밖에요.
며칠 전 저의 첫 번째 생일이었어요. ‘돌’이라고 하더군요. 엄마 아빠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삼촌, 고모 이모들도 모인 자리였어요. 또래의 친구 아이들도 있었고요. 맛있고 예쁘게 차려진 음식들도 많았지요. 조그만 하고 예쁜 케이크에는 제 이름과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도 써 있었어요. 케이크에 꽂혀있는 촛대에서 살랑대고 있는 조그만 불꽃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촛불에서 풍기는 무슨 과일냄새 같기도 한 향기 또한 좋았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고 맛있는 음식, 재미있는 놀이도 좋았지만 케이크 위의 그 예쁜 촛불이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저 혼자 힘으로 힘들어하니까 고모가 도와 ‘훅~’하고 불어 불을 끄던 일은 너무나 재미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지요. 수십만, 수백만은 될 것 같았어요. 각자의 손에는 종이로 된 컵 속에 촛불을 하나씩 들고 있었어요. 먼 발치에서 보니 그 큰 도시에 흐르고 있는 촛불의 물결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더군요. 한 밤중에 도시의 밤거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이런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주고 있는 엄마가 고맙기도 했었지요.
엄마는 계속 사람들의 물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에게 더 가까운 자리에서 더 많은 구경거리를 자세히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복잡해지고 사람들은 많아졌습니다. 제가 타고 있는 유모차가 이사람 저 사람들에게 부딪혀 덜컹거리거나 기우뚱거려 떨어질 것 같아 무섭기도 했습니다. 냄새는 또 왜 그렇게 지독한지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이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피켓을 들고 주먹을 쥔 손을 하늘로 뻗치며 무언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무슨 띠를 동여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몹시 화가 난 듯한 얼굴이었고 무엇이든지 손에 닿기만 하면 금방 때려 부술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도 덩달아 주먹 손을 어깨 위로 뻗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무서워졌습니다. 평소에 봐 오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위해 보드랍고 맛있는 음식을 손수 만들어 먹여주며 맛있게 받아먹는 내 모습을 바라다보며 행복한 듯 미소 짓던 엄마. 나를 보듬어 안은 채 쓰다듬으며 자장가를 들려주던 엄마. 그런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지금 무엇을 원하며 소리를 높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평소의 엄마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그전처럼 나를 보듬어 안고 쓰다듬으며 뺨에 뽀뽀를 해 준다 해도 오늘의 이런 엄마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그 품속에서 쉽게 잠을 청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됩니다. 엄마의 젖을 물고 있으면서도 그날 밤 세종로 네거리에서의 엄마 모습만 자꾸 떠오르게 되면 어쩌나 싶기도 합니다. 촛불이 무서워 졌습니다. 엄마도 무서워졌습니다. 송구영신 때의 촛불예배에서도 성난 관중들 틈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치는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촛불은 이제 초 중고 언니 오빠들, 대학생들, 근로자들, 교수들은 물론 심지어는 의원님들까지도 애용하고 있는 놀이기구가 됐다고 하더군요. 그분들도 거리에서의 아우성을 마치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 엄마의 평소 모습처럼 잔잔한 미소로 가족들과 어우러지는 행복한 저녁 한때를 보내게 될는지요.
이제 우리의 일상 생활 하나하나에 더 이상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은 언니들의 이야기, 쌀 수입이나 광우 병 같은 나라의 이런 저런 일들을 불러드리지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더구나 촛불 같은 것은 그런 자리에 들고 나오지 말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어린 소견으로도 촛불은 그런 일에 사용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있거든요.
제가 저 자신의 의지대로 의견도 말하고 몸도 움직일 수 있는 나이가 되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안전벨트라는 이름의 띠에 꽁꽁 묶여 있어야 하는 유모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그때까지는 이렇게 행동을 억제당하고만 있어야 하겠지요. 설마 그때까지도 우리 주변에 이런 일들이 남아있게 되지는 않겠지요. 엄마들은 또다시 나 같은 어린애들까지 그런 델 데리고 나가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건 보고 싶거나 배우고 싶지는 않거든요. 정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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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08-07 2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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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일까요? 우리들에게 시위문화가 길거리를 메우고 도심을 메우고 물결처럼 넘실대는 시대가 ... ... 이념과 이념사이의 갈등을 그렇게 꼭 시위로만 풀어야 하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시위 이전에 대화로 또 갈등이 일어나기 이전에 갈등의 원인을 찾아 미리미리 해결한다면 그런 시위는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 시위때문에 5공 6공 시절을 서울구치소 근무로 보내야 했던 그 시절이 너무나 힘들었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유모차 어린이의 시각으로 본 시위문화 어른들이 빨리 고쳐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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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8-08 1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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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 뉴스에 <원정시위대>라는 말이 나와 무엇인가 했습니다. 반 WTO 시위를 위해 한국의
데모꾼들이 홍콩까지 갔다고 하더군요. 원정시위대는 폭력으로까지 치달아 수백명이 연행되기도 했고 중국언론에서도 비난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폭력으로 합쳐진 힘을 집안 밖에까지 내보이고 싶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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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8-08 0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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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글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해외에서도 보기 민망했던가 봅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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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8-08 1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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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살아온 것이 제가 이제까지 살아온 기간의 절반 이상이 됩니다. 나름대로의 '철'이 들 나이로 따진다면 이곳에서 보낸 세월이 절반보다도 훨씬 더 긴 세월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눈과 귀 그리고 마음까지도 항상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좋기만 한 소식을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부끄럽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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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순태 |
09-08-08 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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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반갑습니다. 늘 좋은 글로서 작가방을 지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첫 돌을 맞은 꼬마의 맑은 영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실감나게 펼쳐주셨습니다.
케이크에서 살랑대는 향기나는 촛불과 그 순간의 행복한 기억을 오래토록 간직하여 축복받은 아이의 건강한 생을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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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8-08 1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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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방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중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보니 모든 회원님들을 직접 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글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되지만 회원님들의 글들을 통해 그곳의 숨결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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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08-08 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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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글이네요. 동화 한 편 읽는 기분도 듭니다.
그것도 어른들 때문에 험한 세상 구경하며
고생하는 아이의 심정이 되어보게 하는군요.
아이를 통해서 세상의 부조리를 반추해 보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보수 편에 사람들은 동감이 가지만 진보 쪽에 사람들은
또 다른 시선으로 볼 것 같습니다.
제가 kbs 심야토론장에 국민패널로 나갔을 때
유모차를 끌고 시위에 참여했던 여인도 나와 불평 발언을 하는데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세상은 의사소통 부재'가 모든 갈등을 불러일으킨다고 했지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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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8-08 1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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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유모차 태운 채 시위 현장에 나간 엄마에 대한 기사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 엄마가 주먹을 불끈 쥐고 뻗쳐 올리며 구호를 외쳤다는 말에는 더더욱 놀랐습니다. 요즈음도 본국 뉴스에서 시위 현장을 볼라치면 수백 수천명의 시위자의 몸동작, 구호, 노래 등이 하나같이 통일 돼 있더군요. 연예인들, 특히 그룹들이 무대에서 공연을 할 때 동작과 보칼을 일치 또는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시위대들이 학생이든, 근로자든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교수님들이나 의원님들도 박자가 척척 맞게 진행이 되더군요. 도서실에서, 작업 현장에서, 연구실에서 또는 의사당에서 그런 연습만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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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승 |
09-08-08 1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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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의 관점에서 쓰여진 글이군요. 시각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미래에는 3인칭 수필도 쓰여질 거란 예측을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최원현 선생님의 평론에서) 이미 이곳에서 봅니다.
아이가 말하니까 훨씬 더 설득력을 갖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만은 참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런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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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8-08 1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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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안전을 위한다는 구실로 벨트에 꽁꽁 묶인 채 완전히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이끌려간 어린아이가 시위현장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 살다보면 싫거나 좋거나를 떠나 본의가 아니더라도 대의에 따라야 할 때가 있지만 유모차를 태운 아이를 데리고 시위현장에 나가는 엄마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를 한번 생각해 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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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행원 |
09-08-08 1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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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보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헌데...어디서 한살배기 똑똑한 그런 아이를 발견했습니까.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어지간히 살아 온 나도 그런 훌륭한 생각을 하기가 어려운데 참으로 영특한 아이같습니다..ㅎㅎ..그런 아이가 나온다면 이 나이에 무리를 해서라도 늦동이 한 놈 만들어 보고싶습니다..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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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8-08 1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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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그렇게 똑똑하고 영특하다고 하시니
그 아이가 바로 저 자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걱정은, 제가 그 아이가 된다 해도 선생님께서
저를 '똑똑하고 영특한 아이'로 인정을 해 주실는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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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09-08-09 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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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습니다.
시사하는 바도 많군요
그런데 보는 관점부터 이조그만 사회가
갈등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작가회가 아니고 다른 곳에서
해방후 지나온 짧은 역사에 대해서도
서로 양보하지 않는 갈등의 시각을 보았지요
우리 사회가 지금 그렇습니다
보수와 진보층의 시각차도 그렇고
지역간의 시각차도 그렇고
세대간의 시각차도 그렇고
혼란의 시기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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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4-08-05 06: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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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저래도 민주화라는 깃발아래 자기 자신만의 생각이 절대적이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자기만의 뜻만이 관철 되기를 바라는 것 같은 세상 같기도 합니다, 이런 것도 민주화라는 이름아래 놔두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 같은 건 상관할 것 없이 내 뜻대로만 고집하는 것도 '민주화'라는 재 해석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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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09-08-11 2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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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선생님은 유모차에 타고 계셨군요^^
저는 텔레비전 앞에 있었습니다.
문학인의 '보편적 사상'에 대하여,
수필의 기능에 대하여 곰곰 생각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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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8-11 2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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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일 그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이였다면 간접적으로나마 '순진'을 흉내내 보려는 위선의 마음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많은 가르침의 말씀을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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