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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희순 |
날짜 : 09-07-31 13:51
조회 :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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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8월의 염천은 모내기를 하지 못해 대파(代播)한 메밀마저 불태우고 마을 앞 골짜기 바닥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불개미 군단’을 만났다. 몸길이래야 5, 6㎜에 불과한 불개미 떼는 골짜기 바위틈에서 수도 없이 기어 나오면서 곧 대오를 갖추어 산기슭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백여 마리가 종대(縱帶)를 이룬 대단한 군세였다. 개미떼는 야트막한 너덜겅을 지나고 긴 가물로 배배꼬인 억새밭을 빠져나와 아카시나무 등걸을 타고 넘어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150미터의 장대한 행렬은 5미터 절벽 중간쯤의 솔새 덤불 속으로 사라져갔다. 두 시간이 지나도 개미군단의 행렬은 이어졌다. 다음날 오전 새참 때부터 구멍이 뚫린 하늘은 종일 350㎜의 억수를 쏟아 부었다.
오밤중의 해일로 시내가 잠겨 바다가 된 적도 있었다. 큰아버지 가족은 다락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구했다. 그때에 물은 ‘십리방천(十里防川)’ 간척지를 넘어 기찻길을 지나 삼거리에서 멱이 차더니 사흘 만에 뭍을 허락하였다. 본디 그 삼거리까지 바다였는데 고래가 물을 다 마셔버릴 거라는 출처불명의 동요대로 일제강점기 ‘고려농장’이 십리나 되는 방천을 쌓아 바다를 막았다고 했다.
1987년 7월 중순에 호우를 동반한 태풍 ‘셀마’가 짓쳐왔다.
시오리에 걸쳐 반듯하게 정비해놓은 냇둑 스무 군데가 터져나갔다. 피해현장에서 만나 뵌 어르신은 홍수가 논바닥을 할퀴고 논둑을 휩쓸어 제멋대로 내어놓은 물길을 가리키며 혼잣말처럼 한탄 하였다.
“그대로여…옛날 그대로 되었어.”
나는 도움이 될까하여 챙겨간 옛 지적도에서 원상을 회복한 자연의 신비를 확인하곤 넋을 잃었다. 어느 마을 앞엔 아예 널찍한 소(沼)가 생겨났다. 저곳은 본래 미나리꽝이었다고 이장님이 귀띔을 해준다. 나는 다시 도면을 꺼내 ‘미나리꽝’을 보았다.
단감나무 마흔다섯 그루에서 ‘합격품’ 예순일곱 개를 따고나니 여남은 개가 까치밥으로 남았다. 거름도 하지 않고 때맞춰 약 한번 치지 않은 채 내버려둔 응보였다. 그러나 그해 송광사 주변의 높다란 고목에는 때깔도 좋고 탐스러운 감들이 팅 빈 만추의 하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누가 거름을 주었느냐고 물으니 거름 준 일이 없다한다. 누가 살충제라도 두어 번 쳤느냐고 물으니 그런 일은 더욱 없노라하였다.
옛 지적도는 폐기처분되었다. 나는 감나무 밭에 거름을 주고 농약을 흠뻑 뿌렸다.
철없던 시절, 물이 잘 오른 송기를 해먹겠다고 우듬지를 뎅강 잘라버린 곰솔은 어찌하고 있을까.
감나무 밭을 둘러보니 올가을에는 이웃들한테 인심을 쓸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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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7-31 16: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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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인 자연변경은 화를 불러오게 되어 있습니다.
수천만년 동안 지형이 유지된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이를 억지로 틀어 막으니 병고가 아니 생기겠습니까.
옛날 미나리꽝 자리에 물이 고인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올해는 과수가 풍년이 들것 같더군요.
여기저기서 만나는 과수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하더군요.
마지막 날씨가 부조를 해줘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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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09-07-31 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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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히 석축을 쌓고 아스팔트포장을 한 광장이 옛 미나리꽝으로 돌아가고 그 형상을 그대로 구 지적도에서 확인하는 순간 자연의 신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회장님, 격려의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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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9-07-31 2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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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장마가 마른 장마인 것 같습니다.제가 어려서 느끼는 장마는 이런 장마가 아니었습니다. 강낭콩이 익을 무렵 내리기 시작한 비는 보슬보슬 쉴새 없이 내려서 큰 물난리가 날 일도 없이 그렇게 거의 한달간을 내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장마가 끝나고 초등학교에 등교한 학생들은 시골마을 아이들이지만 다 얼굴이 햇볕을 보지 못해 햐얗게 변해 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다시 한번 어릴 적 고향마을의 장마가 생각이 나는 이유는 아마 날이 무더워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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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09-08-01 2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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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회장님, 댓글 감사합니다.
왕송호수가 대체 어떻게 생긴 호수일까 궁금하여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선생님께서 가히 자랑하실만한 '걸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사랑이 있고 작가회 원로 선배님들의 두터운 우정이 있기에 무심코 불어오는 바람조차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요즘의 장마는 과연 열대우림기후를 연상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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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9-08-02 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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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쭐대며 어디든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려고 가진 수단을 부리지만 자연의 순리는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자연 가까이 살면서 느낍니다.
동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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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09-08-03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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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배님, 감사합니다.
억지로 짧게 맞추다보니 얼개부터 엉망입니다.
자연을 벗 삼으시며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보여주십시오. 선생님의 작품마다 잔잔한 감동을 받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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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09-08-03 1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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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불개미 군단이 어디로 갔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비를 피해 미리 피난을 간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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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09-08-05 1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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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현장을 확인했을 때 불개미떼는 벌써 그렇게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부터 이동을 시작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목격한 시간만 해도 두 시간이 훨씬 넘었던 듯합니다. 자잘한 불개미 행렬의 폭이 25~30cm 쯤 되었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였지요. 그들이 높은 절벽 중간지점의 풀숲으로 사라지는 바람에 더 이상 추적할 수가 없었는데, 공교롭게도 다음날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것이 곤충의 '예지능력'이라고 믿고있습니다.
행렬 좌우 가장자리를 따라 각각 7~8마리의 개미가 핼렬을 거슬러오는 광경은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전령인 듯했습니다. 좀 자세히 쓸 생각이었는데 우격다짐을 하다보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선생님의 산뜻하고 쌈빡한 작품 자주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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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09-08-05 2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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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셨군요. 선생님. 불개미 군단 경이롭습니다.
좌우측에서 내리락 거리는 '개미전령'의 모습이 눈에 잡히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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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승 |
09-08-08 1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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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대단한 것 같아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지극히 무력하지요.
세월이 흐를수록 부쩍 잦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감나무에 밑거름을 주면서 희망을 키우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올 가을에는 누렇게 익은 숭굴숭굴한 감을 받은 이웃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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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09-08-11 1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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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교만함이 재앙을 불러들이는 듯합니다. 태풍 '모라꼿'으로 이웃나라 중국과 대만,일본에서 많은 사람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그저 안타까움만 더합니다.
선생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과 동물과 꽃, 온갖 사물은 조심스럽게 걸어나와 제 눈 앞에서 비밀스런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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