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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언주 |
날짜 : 09-03-01 18:59
조회 : 2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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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굴러 떨어진다. 신神들은 자신들의 비밀을 발설하고 속인 시시포스에게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는 형벌을 내렸다. 시시포스가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순간, 바위는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광야를 향해 굴러 떨어진다. 하늘이 없는 공간, 헤아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흙투성이가 된 손등 위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언제나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인간의 기대와는 달리 돌은 굴러 떨어졌고, 또다시 밀어 올린다. 하루는 습관처럼 지탱되다가 사라졌다.
하나 둘 별이 살아나고 노동으로 지친 남편이 돌아온다. 그의 등이 힘없이 굽어 있다. 기다림과 걱정으로 보낸 시간동안 생긴 상처와 작은 배신은 가슴속에 미미한 파문을 일으킨다. 꼬리를 무는 의문과 미움 때문에 등 뒤로 다가온 그의 허무와 고통을 껴안지 못하고 외면하고 만다.
긴장을 풀고 깊은 잠에 빠진 남편을 바라본다. 밤은 노동에서 벗어나 육체를 자유롭게 하지만 그렇다고 달콤한 휴식만은 아니다. 허무와 절망이라는 새로운 형벌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의 형벌은 곧 나의 몰락이기도 하다. 수천 번을 되풀이해도 끝이 없는 노동,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노동임을 알고 있지만 나는 침묵해야 한다. 남편의 노동 뒤에 숨은 내 가슴 속에서 비겁함이 살아난다. 끊임없이 그를 산 정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남편의 의지라기보다는, 나의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물거리는 별들의 그림자 사이로 코고는 소리가 정적을 흔든다. 돌아누운 남편의 등에서 고뇌와 고통이 전해온다. 낮 동안 사내답게 보이기 위해 내색하지 못했던 고독의 흔적들이다. 상처로부터 말랑말랑한 속살을 보호하려 만들기 시작한 굳은살이 손과 발에 두텁게 쌓여 있다. 나무의 옹이처럼 삶에 대한 열정이 아름다운 무늬로 남은 것이 굳은살이라 해도, 그 굳은살 속에 웅크린 내게는 구속이고 상처일 뿐이다. 그것은 내 삶의 전쟁터에서 그가 대신 치른 흔적이다.
중년의 고독에 맞서 싸워야하는 남편에 대한 연민과 짐을 나누어 질 수 없는, 나약한 자신에 대한 동정으로 가슴이 아파온다. 희망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정지된 시간이 지루한 권태로 다가온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그는 성실한 일꾼일 뿐이다. 여명을 밀어내고 아침이 되면 그는 다시 일어나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산기슭으로 돌아가야 한다. 굳게 닫힌 마음을 뚫고 신神에 대한 원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선다.
아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본다.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만약 세상의 종말이 예고되고 생의 마지막 날,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군가를 말해야 한다면 바로 나의 남편 시시포스라고 말할 것이다. 돌을 굴리는 것이 그의 운명이라면, 고통을 옆에서 지키는 것 역시 내 운명이다. 같은 희망과 고뇌를 가지고 살아온 동안 우리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전우애戰友愛를 나눠 가지는 존재이다.
별이 하나 둘 사라진다. 달이 점점 부풀다가 밀려오는 여명에 자취를 감춘다. 별빛을 섞던 바람이 잦아들고 날 선 마음이 조금씩 허물어진다. 어쩌면 밀어올린 바위가 한번쯤은 멈출지도 모른다는 인간적인 희망이 생긴다. 해가 솟으면 산으로 향하는 그를 위하여 벗어 놓은 셔츠를 손질한다. 먼지를 털어내고 구겨진 곳을 찾아 구석구석 깨끗하게 펴고 말끔히 하루를 다림질 한다. 뜨겁게 달구어진 다리미로 빳빳하게 깃을 세우고, 산맥처럼 굽은 등뼈를 감쌌던 어제의 흔적을 지운다. 밤새 먼지처럼 내려앉은 절망을 털어내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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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희 |
09-03-01 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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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선생님, 오늘 목사님 설교 말씀이 '흔적'이라는 주제였습니다. 목사님은 돌아가신 아버님의 시신을 알콜로 닦으며, 아버님의 몸에 남겨진 흔적을 보며 아버님의 사랑을 다시 느꼈다고 합니다. 전란으로 인한 상처, 물에 덴 흔적, 불에 덴 흔적을 보며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고 나는 사랑이란 '흔적'이라는 정의를 내려 봅니다.
남편의 손과 발에 박힌 굳은살은 삶의 전쟁터에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 '흔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참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같은 날 사랑의 '흔적'에 대해 공감하며 두 분의 말씀에 감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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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주 |
09-03-02 0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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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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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09-03-01 2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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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선생님처럼 남편의 힘듬을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자세로 산다는것은 참으로 소중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알베르까뮈의 시지푸스의신화라는 책에서 보면 인간의 운명을 짊어진 인물로 묘사한데서 도종환씨등 여러분들이 많이들 성격은 접어두고 그냥 인간의 운명을 대표하는 인물로 인용하던데 전에 그리스 로마신화 책을 한권 사가지고 읽다보니 시지푸스는 참으로 교활하고 영악한 인물이던데 이선생님의 남편되시는분은 절대로 그런 인물은 아닐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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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주 |
09-03-02 0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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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ㅋ.. 전형적인 도덕교과서인데요...시지프스의 성격은 인간 내면에 숨은 진실이 아닐까요. 그것이 시지프스보다 그의 아내에게 촛점을 맞춘 이유입니다. 아내의 순종마저 의심한 시지프스지만, 어쩔수없이 그의 아내이고 그 아내 역시 또 하나의 시지프스라는 생각이 들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았어요. 실존철학과 수필을 접목시켜 보고 싶기도 했고.
남편 흉본 것 아니예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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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3-02 0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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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올려주시는 글을 대할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엄중한 생업의 무게는 그 어느때보다는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어려움을 참고 참고 지내면 밝게 웃을 날이 있을겁니다.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살아숨쉬는 생생한 글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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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주 |
09-03-02 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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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 끼쳐드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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