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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영보 |
날짜 : 09-01-24 07:25
조회 : 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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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도둑
박 영 보
중학교 이학년 때쯤이었니 오십여 년 전의 일이다. 식목일을 전후하여 학교에서는 미화작업이 한창이었다. 수많은 종류의 꽃이나 관상수들의 씨앗이나 묘목들을 구입해 왔었다. 그 중에는 일년생도 있었고 다년생들도 있었다. 각 학급마다 할당된 장소에 화단을 만들고 학급자체에서 가꾸고 관리 하도록 하는 프로젝트였다. 거의 매일 방과후 한두 시간씩은 이런 작업을 해야 했다. 어떤 때는 체육이나 음악 또는 미술 시간을 맨 마지막 시간으로 바꾸어놓고 그 시간에 화단작업을 할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도 나는 각종 꽃이나 나무들을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 들판을 지나칠 때나 산에 가게 될 때에도 눈에 뜨이는 들꽃이나 모양새가 있는 작은 나무들을 캐와서 심기도 하고 씨앗을 수집해다가 심기도 했었다. 그런 나의 습성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타 지역을 여행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미주 지역만 해도 엄청 큰 나라이기 때문에 각 지역별로 기후나 풍토가 달라 자라는 식물의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던 욕심이 생기는 것들이 많기도 하다. 남미 페루나 에콰도르 같은 중남미를 방문할 때도 그랬고 호주나 뉴질랜드를 다녀올 때나 북구의 노르웨이나 핀란드 같은 나라를 다녀올 때도 나의 여행가방에서 가장 소중하게 다루어 지는 것은 그런 씨앗들이기도 했다.
견물생심이랄까. 무언가 눈에 뜨이면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견물생심의 정도를 훨씬 웃돈다. 눈에 뜨이면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싶어질 만큼 집요해진다. 한국 방문 시 할미꽃이 핀 위치를 기억해 두었다가 출국 전에 캐오기도 하고 어느 집 담장에 특이한 모양의 표주박이 열려 있으면 가을 방문 때 들려 씨를 얻어오기도 한다. 지금도 한국에 가면 중학교 때 우리집에 지천이던 보랏빛 꽃에 보랏빛 콩이 열리는 콩 넝쿨이 있는 집이 있는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지만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콩 한 포기가 마당의 절반이상을 덮을 만큼 무성하고 꽃과 열매도 아름다우며 식단을 장식하기도 했던 종류의 콩이었다. 정확한 그 콩의 종류나 이름을 안다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알아보겠지만 아직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모르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다.
꽃 도둑. 나는 꽃을 훔친 적이 있는 전과자이다. 그것도 단순한 견물생심에 의해 순간적으로 ‘슬쩍’ 해온 정도가 아니라 사전에 치밀한 목표와 계획을 세운 도둑질이었는데 그 방법 또한 지능적이었다. 지금 와서 그때의 일을 생각해봐도 양심의 가책이라든가 미안한 감이 들지도 않고 그 성공적인 치밀함에 대하여 스스로 감탄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파렴치범이라 할만도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정도의 머리를 잘 키워왔다면 지금쯤 대도 조세형의 후계자쯤으로 입신을 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 많은 묘목 중에 나의 표적은 장미나무였다. 값으로 따져도 그때 학교에서 구입한 묘목 중에서는 가장 비싼 종류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는 각종 꽃들이 많이 있었지만 장미는 없었고 집안에는 돈을 들여가면서 까지 사다 심을 만큼 장미를 욕심 내는 사람들도 없었다. 학급별 묘목을 할당 받는 그 시간부터 목표를 세웠다. 목표가 세워지니 방법에 대한 계획도 필요했다. 학생들 중에는 이 화단 작업을 귀찮아 하고 마지못해 선생님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시간을 때우기 위해 건성으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장미뿌리 하나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으니 나에게는 이것이 기회이기도 했다. 자청해서 솔선을 하고 있는 나를 탓할 사람도 없었으니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학급별로 몇 그루씩 할당을 받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값비싼 고급 묘목이기도 했겠지만 장미만큼은 할당을 하는데 각 학급별로 똑 같은 숫자로 나누어 주었다. 할당을 받은 장미를 몇 그루 심고 나서 배당을 하는 선생님께 “저희 반에는 X나무밖에 없는데요.”라고 말씀을 드리니 두말 없이 두 그루를 더 주시는 것이었다. 속으로 “야호~” 환호하며 이를 심는 데는 콧노래까지 나왔었다. 심는 방법으로는 두 그루를 한 구덩이에 겹쳐서 심었다. 두 구루를 각각 나누어 심으면 금방 눈에 뜨이기 때문에 두 그루를 V형, 즉 한 나무에 두 개의 가지가 뻗쳐 나온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겹쳐서 심으니 이제 두 그루는 얼마 후면 내 몫이 되는 셈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날 저녁 플래시 라이트와 큰 종이봉지를 가지고 학교 마당으로 숨어들었다. 숙직실은 교사 건물의 뒤쪽에 멀찌감치 있어서 안심을 해도 되었다. 낮에 심어둔 위치를 알고 있으니 찾고 뽑아내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가지고 간 플래시 라이트는 뽑고 나서 흔적이 나지 않도록 주변의 흙을 고르기 위해서만 잠시 사용했을 뿐이다. 가슴이 떨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은 큰길까지 나와 집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이튿날 등교를 하고 나서 제일 먼저 발을 멈춘 곳은 바로 그 화단이었다. 뽑거나 땅을 헤쳤던 흔적도 없이 완벽하였다. 주거침해에 절도, 증거인멸까지도 철저했던 나의 전과 기록은 학교를 졸업한 이래 지금까지도 전혀 남아있지 않다. 세상에 완전 범죄라는 것은 없다는 말도 헛소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면 웃음이 나온다.
한국수필작가회 박영자님의 수필 <꽃 도둑>을 읽고 있고 있으려니 문득 지난날의 일이 떠오르는 것이다. 님의 글에 나오는 매화나무와 분재나 알록 제비꽃을 들고 간 이야기를 대하고 보니 꽃 도둑전과범인 나 자신도 화가 치민다. 나의 도벽과 죄질을 그 도둑들의 행위와 비교를 해가며 차별화를 두겠다거나 나의 죄질은 적어도 그들의 죄질보다는 가벼울 것이라는 자위를 해보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기가 꽃을 훔치고 싶을 만큼 욕심이 나는 꽃이라면 그 꽃을 가꾸고 있는 주인도 그만큼 사랑을 쏟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함께 나누는 이웃사랑은 꽃 못지않게 아름다울 것이다. 운동 삼아 아침마다 거리를 지나칠 때, 어느 집에 아름답고 신기한 꽃이 있거나 과일나무가 있으면 눈 여겨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찾아가 씨앗을 얻어다 심거나 나뭇가지를 얻어다가 접목도하다 보면 그들과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나눔의 정도 느껴지게 된다. 집에 수도 없이 돋아나는 대나무와 등나무를 싹 틔워 인터넷에 올려 그 모종을 원하는 분들에게 무료로 분양해 온지도 오래되었다. 그들로부터 가끔 연락도 오고 자기들이 집에서 직접 키운 올개닉 야채나 과일 또는 꽃도 가져다 주는 이들과의 대화도 즐겁기만 하다.
오십여 년 전의 전과 사실이 이제 와서 새삼 부끄러워지고 있다는 것은 이제서야 양심이라는 것을 찾게 되었다는 것일까. 그런데도 나의 꽃과 나무에 대한 욕심과 도벽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가 않다. 남들이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에 대한 도벽 같은 것은 없지만 ‘내년 봄에 두고 보자’는 심사로 머릿속에 입력을 시키고 있으니 사전모의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못된 도둑의 심보에서가 아니니 파렴치범까지 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요즈음에는 그 집에 무슨 꽃이나 나무가 있는지 만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없는 것은 무엇인가를 함께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봄이 오면 화분에 담아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기회가 된다면 당시의 그 중학교에 가서 늦둥이 아들이나 손자 벌 되는 후배들에게 지난날의 범죄사실을 고해성사를 하는 마음으로 털어놓고 싶다. 당시 학교에 손실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집안에는 장미향을 풍기게 했고 모교를 지금껏 잊지 않고 사랑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으니 오래도록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장미나무 접목 솜씨는 그 성공률이 90퍼센트 이상은 되니 모교를 위해 자원봉사 차원에서 야생 찔레나무에 장미 접목을 해주고 싶기도 하다. 찔레나무만 있다면~.
* 한국수필작가회 박영자님의 수필 <꽃 도둑>을 읽고 (12/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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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1-24 0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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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장미를 집에 심어 가꿔보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하고 웃었습니다.
가지가 난것처럼 V자로 심어놨다가 밤에 들어가 훔쳐온 것은 지능범(?)에 속하지만
애교스럽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설명절 잘 쇠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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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1-28 0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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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다가 호기심이 생겨 저지른 일이 아니고 사전에 치밀한 계획까지 세워 성사를 시킨 것이니 전문적 도둑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지나치다 좋은 나무, 아름다운 꽃을 보면 그런 마음이 발동하고 있으니 언제 또 무슨일을 저지르게 될지 염려가 됩니다. 혹시 제가 한국에 가서 선생님 댁을 방문하게 되면 철저한 단속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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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09-01-27 1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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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생님은 도둑이긴 한데 아름다운 도둑이었습니다. 조금은 다른이야기이겠습니다만 빅토르유고 형님 생각이 나는군요 하하 그런데 잔발잔은 그 아름다운 빵땜에 19년이란 옥고를 치루었는데 박선생님은 오십여년이란 긴세월동안 마음의 옥고를 치루고 계신지도 모르겠군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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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1-28 0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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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회개를 하고 새사람이 되어서 착하게 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삽목을 하여 성공한 후지사과 나무와 등나무 등을 나누어주는 재미도 있습니다. 자두, 복숭아, 넥타린이나 대추와 단감이 익을 때는 이웃들, 교우들 문우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3월 중순 등꽃이 필때는 뒷마당 패티오에서 꽃잔치도 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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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자 |
09-02-01 0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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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선생님, 아주 재미있는 글을 쓰셨네요. 꽃을 좋아하시는 심성이 저와 많이 비슷하시네요. 선생님 글을 읽다보니 저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꽃도둑이었거든요. 애기 붓꽃을 화단가에 돌려심는 작업을 우리반이 맡아서 했는데 6교시 끝나고 집에 올 때 한 포기 슬쩍해다 심은 것이 우리집 마당에 꽃방석을 이루기도 했지요. 그러다 들키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그랬는지. 제가 교직에 있을 때 퇴직을 하면 꽃집을 차리거나 책방(서점)을 차리겠다고 했던 것도 꽃을 나누고 싶은 소망이었는데 아름다운 꿈으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등꽃이 핀 선생님댁의 정원 풍경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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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09-02-06 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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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박선생님과 감옥이라도 함께 같이 들어갈 수 있었더라면 어떻게 됐을 까요. 흔히들 감옥에서 뜻을 맞춘 사람들끼리 어우러져 출감후에 또다른(더 큰)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경우도 종종 있더군요. 지금쯤 아마 꽃집정도가 아니라 박영자 선생님과 동업으로 시작한 큼지막한 꽃 농장이 성업중일 수도 있을 뻔 했습니다. 등꽃, 삼월 중순이면 등꽃이 한창입니다. 3월 17일이면 저희 결혼 기념일이기도 한데 아이리스의 명절인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St. Patrick's Day) 이기도 합니다. 제 사이트의 <수필> 방에 올려있는 <등꽃 축제>를 읽어 보시면 등꽃에 대한 많은 설명이 될것도 같습니다. 3월 등꽃이 만발한 저희집 뒷마당을 사진으로 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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