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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09-01-20 17:40
조회 : 2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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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그 사람의 안부
임병식
거문도를 생각하면, 내겐 목안에 박힌 가시처럼 걸리는 것이 있다.
여수에서 남쪽으로 114Km나 떨어진 외딴 섬. 행정구역상으로는 삼산면에 속하지만, 통상적으로 본도와 동도 서도를 아울러 지칭하는 섬 이름. 이 거문도는 사람이 사는 유인도로 초도와 손죽도, 평도와 광도가 있지만, 그 밖에도 무인도로 대삼부도와 소삼부도가 있다. 나는 여수지역의 유인도서는 모두 둘러보았지만, 오직 한군데 광도만은 아직 가보지를 못하여 마치지 못한 숙제처럼 늘 아쉬움을 안고 산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거문도’하면 먼저 광도가 생각이 나고, 또 하나 '목안에 든 가시'같은 일이 머릿속을 맴돈다. 다음은 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루는, 본도에 위치한 지서에서 소내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떤 사람이 선박사진을 들고 찾아왔다. 배를 도난당했는데, 혹시 찾을 수 있을까 해서 들른 사람이었다. 사진을 보니 같은 형체의 선박이 많아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선박명이 많이 눈에 익었다. ‘제3진양호’란 이름인데, ‘제3’이란 건 모르지만 ‘진양호’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뇌종간에 찌르르 필이 꽂히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수첩에 메모를 많이 해두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을 적어두기도 하고, 업무상 필요한 것들을 적어놓기도 하였다. 그 수첩에는 소재지를 입출항하는 외지 선박들도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혹시나 나중에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해서 대비한 것이었다. 한데, 그 속에 적어둔 선명과 비슷한 것이 기억 났던 것이다.
그 경위는 이러하다. 어느 날 보니 어떤 선박 한척이 선착장에서 멀찌기 벗어난 지점에 외따로 매달아 놓은 게 보였다. 거기에다 이상한 점은 선명이 적힌 위치가 비정상적으로 옆으로 많이 치우쳐 있었다. 마치 양복 깃에 단 뱃지가 좀 아래쪽에 달린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자연스럽지 못하고 좀 어색했다. 당연히 적어두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찾는다고 하는 선박이 그 배의 선명과 비슷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그 선박을 단박에 의심했다. 선박을 훔친 후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혹시 ‘제3’이란 글자 두자를 지워버린 건 아닐까. 선적부에 적힌 선명까지 변경할 수는 없으니까, 나머지 글자는 그대로 살려두고 앞 글자를 지우는 바람에 그렇게 본래의 위치에서 벗어나 아래쪽에 처지듯이 보였던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신분을 알아보기 위하여 곧바로 그의 거주지로 달려갔다. 가서보니 그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고 없고, 집주인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주인을 상대로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수사의 단서가 될 만한 의심스런 행적을 알아내게 되었다. 뭔고 하니 그는 고기잡이를 나가면서 언제나 동거녀를 동행함은 물론, 언제나 해가져서 어두워지면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의심스런 것은 결혼사진이었는데, 그게 어쩐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지나치게 호리호리한 몸매에 살찐 얼굴이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다른 사람 결혼사진에다 자기들 얼굴을 합성시켜 놓은 것이었다.
그것을 알게 되자 나는 그를 거의 범인으로 확신했다. 그리하여 그를 잡기위해 곧바로 검거작전에 돌입했다. 차선한 배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연통에다 거적을 덮고 최대한 은밀하게 그가 사는 해안으로 접근을 했다.
그렇게 하여 그는 금방 검거 되었다. 잡아놓고 보니, 그는 충남 대천의 대합양식장 관리선 중 한척을 훔쳐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선박의 글씨가 한편으로 치우쳤던 것은 추측한 대로 '제3'이란 글자 두자를 지워놓았기 때문이었다. 한데, 검거한 뒤에 불상사가 일어나 그를 놓치고 말았다. 야간 근무자가 감시를 소홀히 하여 놓쳐버린 것이었다. 그 바람에 얼마나 맥이 빠져버렸는지 모른다.
다음 검거 작전은 몇 배나 더 힘이 들어 예비군까지 동원 하고나서 대간첩작전을 방불케 하는 수색작전 끝에 자수를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선박검문을 통하여 외부탈출을 차단하니, 그는 섬에 꼼짝 없이 갇히는 신세가 됐는데, 도망갈 곳이 없자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민가에 내려와 밥을 훔쳐 먹는 바람에 수색범위가 좁혀져서 그는 결국 닷새 만에 자수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잡아놓고 보니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몹시 지쳐있었다.
나는 그가 본서로 압송될 때 한쪽 귀퉁이에서 몸을 감추고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동거녀를 발견했다. 그들이 어떻게 만난 사이인지는 몰라도 단란한 가정을 깨뜨리고 말았다는 안타까움이 스쳤다. 그는 배에 태워져 이송이 되면서 이미 제 정신이 아닌 듯 했다. 눈은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으나, 초점을 잃고 있었다.
사연은 물어보지 않아 모르는 일이다. 결혼사진을 조작한 것을 보면 정상적으로 만났던 사람은 아닌 것 같고, 40이 넘은 나이에 배를 훔쳐 머나먼 낙도까지 온 것을 보면 필연적으로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았지만 수사 외적인 것까지 파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따금 그가 뇌리에 떠오를 때가 있다. 이미 40년도 가까운 일인데,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그는 나중 죄 값을 치르고 나와 그 동거녀와 계속 함께 살고 있을까. 아니면 뜨내기로 만나 한때의 풋사랑으로 종말을 짓고 말았을까. 그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당시의 애환이 떠오르면서 김 씨 성을 가진 그 사람의 안부가 퍽 궁금해진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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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혜자 |
09-01-21 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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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추리소설을 읽는 듯 합니다. 저도 엄청 궁금합니다. 그 남녀가 지금은 어찌 살고 있을까? 어떤 사연으로 그 낙도까지 스며들었던 것인지 궁금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지은 죄에 죄값을 치르지 않고서는 한시도 삶이 편하지 않음을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직업상 글의 소재가 무궁무진하심이 부럽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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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1-21 1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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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자선생님, 답글 고맙습니다. 저는 한달에 적어도 두편은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달은 두 편을 쓴셈입니다.
가급적 직업냄새가 나는 글은 안쓰려고 하는데, 나만의 소재를 찾다보니 자연 쓰게 됩니다.
열심히 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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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화 |
09-01-22 0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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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 신창원이 잡히는 현장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갔다 하던 강아지가 어찌되었나 궁금합니다. 범죄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에 시선이 가는 것은 작가의 눈을 가졌기 때문이겠지요.
임병식 선생님, 설날 즐겁게 보내시고 올해 특별히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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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1-22 0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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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선생님, 설날이 코앞에 닥쳤습니다.
주부님들은 그 어느때보다 마음이 바빠지는 때가 아닌가 합니다.
신창원의 개가 안절부절을 못했다는데, 비록 주인은 큰죄를 지었지만
개의 눈에는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돌봐준 주인이 끌러간데 대한
불안과 안타까운 행동이었겠지요.
선생님도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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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자 |
09-01-22 1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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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선생님, 이런 글은 선생님만의 독특한 소재군요. 긴박감이 느껴지는 이런 경험 아무나 못하는 것이지요. 저도 교육계에 있었지만 직업적인 냄새가 나는 글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암암리에 어딘가에서 그 냄새를 풍기지나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글은 직업적인 것이라기 보다 삶의 애환이 깃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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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1-22 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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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자 선생님, 댓글 고맙습니다.
개성적인 글쓰기, 다른 사람들과 다른 소재를 찾다보니 이런 글을 쓰게 됐습니다.
독창적인 글이 아니고서는 수천 편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독자에게 각인을 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체험의 밑바닥을 더듬게 만듭니다. 설 잘 쇠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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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09-01-24 1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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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형사반장을 본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이런 이례적인 체험은 멋지 문학의 소재인데 대개의 경우 이를 외면하고 다른 것만 쓰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12월 교정 보러시내에 갔다가 식사를 하는 중에 보니 내 앞에; 경찰관이 식사를 하더군요. 그 점심값을 치르면서 그 노고에 감사했더니 그렇게 고마와 하더군요. 봉급은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동네 북으로 사는 경찰관에게 드린 대접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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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09-01-24 1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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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선생님, 가슴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우연히 마주친 식사자리에서 경찰관의 밥값은 내주셨다니
제가 다 고맙군요.
묵묵히 일하는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사회는 이정도나마 유지가 되어 간다고 믿습니다.
너무 정치성향의 공권력 행사 때문에 욕을 먹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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