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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고 먼 화해의 길
  글쓴이 : 임병식 날짜 : 18-10-22 06:37     조회 : 625    
멀고 먼 화해의 길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어떤일이 적대적 관계에 놓여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더구나 그 일이 해묵은 것이라면 무엇보다도 사태를 유발시킨 가해자 쪽에서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도 억지를 부리지 않는 가운데 진정한  반성이 따라야 하는건 물론이다.

조그만 폭행사건을 해결하는 데도 그런 자세가 필수이거늘, 하물며 진실을 왜곡시켜놓고서 적반하장식 주장을 펴온 마당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한데, 지금까지 일언반구, 사과의 말한마디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제 구원(舊怨)을 풉시다' 하면 누가 납득 할 것인가.  다른 것을  보고 말하는  게  아니다.  바로 역사적 비극이며 참변인  14연대 반란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전, 여수 신월리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을 일러  '여순반란사건'으로 일컬어 오다가 근래에 들어  지역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국사편찬위원회에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져  명칭이 '여순사건'으로 변경되었다.  그 바람에 반란사건의  성격이  애매모호해 졌다.  병기하여  ‘14연대 반란사건’으로  쓰고는  있으나 주 명칭이 바뀌니 현격하게 성격규정이 모호해진 것이다.   
알다시피 '여순사건 혹은 14연대반란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 신월리 주둔  좌익군인들이 제주출동을 거부하며  일으켰다. 그 선봉에는 지창수상사가 있다.
 당시 상황은 연대장이 제주출동준비로 부두에 나가 있고,  병장기 수송으로 경황이 없을 때였다. 반란을 일으킨 시각은  밤 10시 30분. 예광탄이 하늘 높이 쏘아  올려 짐과 동시에 나팔소리가 울리고 삽시간에 무기고가 장악되었다.   
영문을 모르던  다수 장교들이 뒤늦게 제지에 나섰으나 손쓸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장사병 30여명이  무참히 쓰러져갔다.   
부대 내  반란에 성공한 지창수는 스스로 인민해방군 연대장이 되어 반란군의 호위를 받고 연단에 올라 일장 연설을 했다.

“지금 여수경찰이 우리를 공격하려고 부대로 쳐 들어오고 있습니다. 또한 북에서는  남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해 3.8선을 넘어  내려오는 중입니다. 동무들은 빨리 총기를 지급받아 무장하기 바랍니다.” 
대다수 군인들은 영문도 모른 체 핵심반라군인들이 이끄는 데로 시내로 진출했다. 병력규모는 1500명 정도. 반란군이  출동하자 부대 앞에서는 대기해 있던 남로당원과 수산학교 학생 20여명이 합류 했다,   
비상 사태를 맞아 여수경찰은 군 정보기관에서 전해준 상황을 접하고  비상소집을 내려  군기대(헌병)와  함께 경찰서와 파출소의 사수에 나섰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물밀 듯이 밀려오는 반란군을 막아낼  수가 없어 20일  새벽 두 시경  경찰서가 점령되고 수십명의  희생자를 내게 되었다.   
이로부터  26일까지 7일간에 걸쳐  관공서는 물론, 시가지는 완전히 반란군과 남노당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 어간에  중앙동 광장에서는  대규모 인민위원회가 개최되고, 거리에는 인공기가 뒤덮었다.  한쪽에서  경찰관과 우익인사의 색출이 이루어지고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는 당시 총원 150명중 제주에 출동한 경찰 70명과  나머지 몇명을 제외하고 전원에 해당한다. 또한 피해도  경찰 가족과 양민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대표적인 희생자로  고인수경찰서장과  천일고무사장 김영준이 있다.
그런데 세월이 50년이 흐르고  여순사건이란  명칭 변경이 돠자 생뚱맞은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란사건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여 반란으로 부터 2년이나 동떨어진  6.25때의 사망자까지  총 망라 시킨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반란시에  경찰관과 우익인사가  학살당한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을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진실에 바탕을 두고, 마땅히 그  명분도  사실관계에 서 찾아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점은 애써 함구를 해버리니 . 중대한 논리모순이 아닐 수 없다. 누가 보나 좁게 보면 14여대 반란사건은 반란군이 부대를 이탈하여 여수 시내를 장악한 7일간이다. 이를 확대를 한다고 해도  진압과정에서 지리산에 숨어든 공비토벌과정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시민단체는  6.25발발 중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내려서 취해진 보도연맹 처리 까지를    여순사건 피해로 포함시켜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니  뜬금없고  동떨어진 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수에서는 해마다 10월 19일이면 경찰과  다른 쪽 유족회가  각각  장소를 달리하여  위령제와 추모제를 지낸다. 금년에도  다르지 않아서  70주기 행사가 각기 열렸다. 이번 유족회 추모제에서는 약간의 소란이 벌어졌다.
  한 보수 인사가 식이 거행되는 가운데 일어나 “여순사건은 반란사건이다.”라고 소리친 것이다.그 바람에 분위기는 싸늘해 졌다.  한데 이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발언이다. 반란사건을 두고 항쟁이니 봉기니 하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심기가 다소 불편 할지 모르지만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4연대 군인만을 가정하고 한 말이라면  그것은 외려 온건한 발언에 속할지 모른다. 다수인의  목격담과 증언을 통해서 보면 반란시에는 상당수의 좌익인사와  좌익학생들이 가담을 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남로당 여수지부장 유목윤의 만행은 극악했다.  보안서장에 오른 후  경찰학살에  앞장 섰을 뿐 아니라 반란치하를 주도했다. 그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다.   
반란 주모자들은 이후  진압과정에서 대부분 사살되거나 형을 받고 수감 중 처형되었다. 이 사건이 미친 영향이다. 비록  뼈아픔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전화위복이 된 점도 있다.  6.25가 터지기 전에  남로당 뿌리를 송두리째 도려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경찰서에서 열린  위령제에서는 당시 희생된  여경 정운자 경사의 아들 김문갑(76세)씨의 증언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장내는 숙연해졌다. 당시 본인은  여섯 살이고 동생은 세살이었는데  어머니를 잃고서  자기는 할머니 손에서 컷고 , 동생은 동냥젖을 얻어먹으며 자랐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을 것인가. 
 반대편에 서있는  시민단체는 당시 경찰관은 친일경찰이고, 악질경찰이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말도 안 된다. 당시 남아있던 일제 경찰은 고작  1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학살을 당했는데, 비근한 예로  곡성에서 경찰관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로 방주현씨 본인은 물론,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차례로  살해당한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도  지극히 일부의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측 한 인사는 희생경찰 유족에게  화합차원에서 이제는 화해하는 것이 어떠냐고 운을 떼다가 강한 거부를 당했다고 한다. 유족들인들 억울함을 넘어, 지금껏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을 모를 리 있겠는가. 이로 미루어 볼 때  치유와 상생 협력은  갈길이  먼 일이 아닌가 한다. 실마리를 풀어내자면 우선 반란치하 7일간에 저질은  경찰관 학살부터 유감표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데 그 점은  먼 산 보듯 애써 외면하면서  허튼 주장만을 일삼으니 선후가 뒤바뀐 것은 물론이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일방적인 시각이 무척  아쉽기만 하다. (2018)

임재문   18-10-23 02:09
임병식 선생님 ! 여순반란사건 이야기만 들었지., 그렇게 상처가 깊은 줄은 예전에 미쳐 몰랐습니다. 여순사건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해주셔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튼 빨리 그 아픈 과거사가 마무리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건강하세요. 임병식 선생님 !
임병식   18-10-23 05:34
임재문선생님, 댓글 고맙습니다.
여순사건은 엄연히 여수주둔 14연대좌익군인이 일으킨 반란사건인데, 70년 세월이 흘렀다고 일부 단체와 인사들이 진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항쟁이니, 봉기니 하면서 왜곡시키고, 경찰관을 죽인데 대해서는 친일경찰, 악질경찰이기 때문에 죽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매도하면서 합동추모제를 갖자고 하면  어찌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진실을 알리는 차원에서 글을  올렸습니다.
이방주   18-10-23 11:07
임병식 선생님
저도 여순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는데
여수에 계시는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의 해석은 시대나 시대의 가치관에 따라 혹시 바뀔 수 있어도
역사적 진실은 바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실을 놓고 서로 이해한 다음 미래를 위한 디딤돌로 삼아야 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이해 당사자간의 화해와 양보가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 글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임병식   18-10-23 15:54
이방주선생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좁은 의미에서 볼때 여순사건은 '1948.10.19일 여수주둔 14연대 좌익군인과 여수지역 남도당원, 그리고 죄악학생들이 가담하여  7일간 시내를 장악한 가운데  경찰관 72명과 우익인사 5명을 죽인 것'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그 후에 이루워진 진압과정에서 죽음두고  마치 여순사건의 본질인양 호도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년후에 일어난 보도연맹 처형사건까지 끌어들어서 여순사건 희생자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팩트가 틀린것이지요.
그리고 반란을 '항쟁'이나 '봉기'니 주장하고 경찰관을 학살한 것은 일제경찰이며 악질경찰이기 때문에 처단한 것이라고 하는데 언어도단이지요.
강승택   18-10-23 23:53
임병식 선생님,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위한 선생님의 글이 작은 메아리로나마 울려퍼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의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임병식   18-10-24 04:36
강승택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엊그제 시월 19일, 여수에서는  두단체에서 각기 70주기 위령제와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두 쪽의 시각을 여실히 드러낸 행사였습니다.
여수 지역방송인 엠비시에서는 때를 같이 하여 여순사건을 조명한답시고 진압과정의 영상물과 살상의 증언들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순사건의 초기 일방적인 경찰관 희생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습니다.
답답하여 진실을 알리는 차원에서 글을 올렸습니다.
일만성철용   18-10-27 18:54
감사합니다. 아픈 역사나마 진실을 보는 듯하여서.
이 좁은 나라에서 남북으로 좌우로, 계층으로 나뉘는 것을 보면 춘원의 조선민족 개조론이 생각이 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임병식   18-10-27 21:26
일만선생님, 댓글 감사합니다.
세월이 흘러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고 해서 역사가 부정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70년전 여수에서 벌어진사건은  반란군과 남노당과 좌익학생이 합동하여 7일간 시내를 점령하여 대다수의 경찰관을 몰살시킨  것이 본질인데, 그 사실은 한사코 숨기면서 그후 에  진압과정에서 벌어진 일만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사안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각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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