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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강승택 |
날짜 : 18-04-06 06:50
조회 : 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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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사람의 신체 부위 중 노화되는 과정이 가장 극명하게 확인되는 곳이라면 역시 얼굴이다. 늘어나는 주름살과 듬성듬성해진 머리숱.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노라면 가슴 한쪽으로 흐르는 바람이 시리기만 하다. 세월의 격랑 앞에 얼굴인들 어찌 온전할 수 있을까 생각을 접다가도 젊어 한때 반짝 좋았던 얼굴만을 기억하는 나 같은 경우 마음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여권기한이 만료돼 동네 사진관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찍는 독사진이어서 머리도 만지고 표정도 신경 쓰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그뿐이 아니다. ‘턱을 당겨라. 눈을 크게 떠라.’ 사진 기사의 이런저런 주문에도 마른 침까지 삼켜가며 다소곳이 따랐다. 좋은 사진을 위해서라는데 마다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리고 잠시 후, 완성된 사진을 들여다보던 나는 너무도 참담한 나머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이에 맞게, 그래도 어느 정도 중후한 모습을 상상했던 기대와는 달리 망가져도 이렇게 망가질 수가 있는가. 평소 거울에서 보던 얼굴과도 다를 뿐 아니라 누가 일부러 안 좋은 부분만 콕 집어 내놓은 것 같은 괴이한 모습에 나는 ‘어, 어’소리만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젊은 기사가 이런 나의 모습이 딱했던지 “그럴 땐 다 방법이 있지요” 한 마디를 남기더니 비장의 무기라도 꺼내듯 팔을 걷고 나섰다. 몇 차례 손놀림이 오가는가 싶더니 깊게 파였던 주름이 사라지고 쳐진 눈꼬리도 한결 순해졌다. 동화 속에 나오는 신비의 샘물이라도 마신 듯 웬 젊은 사내가 턱 하니 나타났는데 나는 다시 한 번 기겁하며 ‘어, 어’를 외치고 말았다.
결국 몇 차례 수정을 더한 끝에 ‘나’ 아닌 ‘나’를 ‘나’로 인정하기로 타협하고 말았지만 찜찜했던 뒷맛은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아 개운치가 않았다.
언제부턴가 자리 잡기 시작한 귀밑의 검버섯이 눈에 거슬려 같은 동호회 회원인 P 원장의 피부과를 떠올렸다. 몇 차례 망설인 끝에 찾아간 병원은 듣던 대로 여자들 천국이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발을 들여놓기 어려웠지만 용기를 냈다.
나의 얼굴을 살피던 P 원장은 평소 낙천적인 성격 그대로 첫 마디부터가 시원시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50대 청년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P 원장의 ‘50대 청년’ 마법에 걸린 나는 한두 번으로 그치겠다던 애초 계획과는 달리 그 후 열심히 들랑거렸는데 얼마 안 있어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남성 금지 구역으로만 알았던 이곳이 실제로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자들이 찾는다는 것이었다. 졸업을 앞둔 고교생이 엄마와 함께 오기도 하고 아내를 따라 쭈뼛거리며 들어서는 중년 남성의 모습도 보였다. 그중 가장 보기 좋았던 장면은 딸과 함께 나타난 80대 초반의 어느 영감님 모습이다. 평생을 농사일로 동동구리무 한 번 발라본 적 없었을 것 같은 절망적인 얼굴이었음에도 P 원장은 예의 그 ‘50대 청년의 얼굴’을 내세우며 아버지와 딸을 안심시키기 바빴다. 친정아버지의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드리겠다는 딸의 마음과 그에 부응하려는 P 원장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떠나질 않았다.
얼굴에 대한 관심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아 요즘은 어린 여학생들까지 화장을 하는 시대다. 엄격한 두발규정으로 귀밑 몇 센티까지 통제 당하던 우리네 학창 시절과 비교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의 얼굴이 오히려 귀여워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른다.
오랫동안 떨어졌던 사람을 만나면 얼굴부터 살피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얼굴을 통해 이미 상대방의 살아온 내력과 형편을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얼굴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말해준다. 얼굴을 가리켜 그 사람의 살아온 역사라 하고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그냥 생긴 것이 아닐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선인의 경험이 농축된 말인지 나이 들어보니 알겠다.
문상 갔을 때 고인이 편안한 얼굴로 가셨다는 자손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편안한 얼굴, 어떻게 하면 그런 얼굴이 완성될 수 있을까.
한동안 깨끗해 보이던 얼굴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예전의 얼굴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애초 얼굴 위의 점 하나 없앤다고 되돌릴 수 있는 세월이라 믿은 것은 아니었으나 지내놓고 보니 모두가 부질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나저나 눈에 보이는 흔적이야 지워라도 본다지만 이 나이 먹도록 이리저리 뒤틀린 마음의 주름들은 어찌 펴볼 수 있을까. 그렇다. 살아오면서 맺힌 크고 작은 매듭들을 지금부터라도 풀어나가자. 사후, 편안한 내 얼굴을 위해. 그래서 가족과 남겨진 사람들 사이에 오래오래 기분 좋은 얼굴로 기억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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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8-04-07 0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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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 얼굴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요즈음은 뭐 보톡스라는 것을 맞는다는데요.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맞을 생각은 아예 없는 거구요. 보톡스 부작용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냥 자연 그대로 이발 면도나 자주하고 요즈음은 염색 혼자 하는 기술자가 다 되었으니 머리 염색이나 열심히 하고, 그렇게 여생을 보내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승택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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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8-04-08 1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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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선생님 의견에 적극 찬성 합니다. 보톡스라니요. 선생님 말씀대로 면도 자주하고 보기 흉하지 않을 정도로 때 맞춰 염색하는 것 이상 자기 관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몸은 늙되 마음만은 청춘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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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8-04-07 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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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 선생님
한 동안 작가회 모임에 가지 못하다가 퇴직 이후 시간이 나서 모처럼 작가회에 나갔을 때
선생님을 뵙고 깜작 놀랐습니다.
글을 쓰는 분이 저렇게 준수한 외모를 가져도 되는 것인가
목소리 또한 저렇게 우렁차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
질투심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었지요.
저는 얼굴은 그 분의 이력서라고 생각합니다.
바꿀수도 속일 수도 없는 이력을 드러내는 곳이 얼굴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선생님 얼굴이 선생님의 훌륭한 삶의 모습이니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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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8-04-08 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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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 선생님, 댓글 읽고 한참 속으로 웃었습니다. 속빈 강정을 과대 평가 해주시다니요. 이 선생님이야말로 훤칠하신 키에 수더분한 인상, 은근히 묻어나는 포용력,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이라 하시면 지나친 과찬이라 할런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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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8-04-08 08: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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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얼(魂)'이 들어 있는 '굴(窟)이라 해서 얼굴이라는 말을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조물주가 어떻게 하나도 같지 않은 얼굴를 만들었는지. 하나 하나 구분되는 각나라 사람들의 공통점도 그렇고, 수 만가지의 표정도 그렇지만 얼굴 속에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까지 오감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얼굴의 신비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강작가의 얼굴보다 더 늙은 얼굴로 사는 ilman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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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8-04-08 1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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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댓글로 선생님을 뵙게 되는군요. 선생님의 독특한 작가적 족적을 항상 뒤늦게 쫓는 후배의 발걸음이 부끄럽습니다. 항상 건안하시옵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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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8-04-09 0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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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택선생님! 봄이라고 하지만 눈도 오고, 비도 내리고, 그러면서 꽃이 만발하고 雪花도 피었으니,
자연의 순환은 무궁무진합니다. 강선생님의 아름다운 마음씨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원래 미남이었던 선생님의 아름다움의 애씀은 봄날의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납니다.
사는 날까지 창조주가 주신 심신을 잘 가꾸려는 노력은 아무리 힘써도 다함이 없을 것입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치고 지면에는 온갖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니 늘 평안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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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8-04-09 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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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섭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봄이라곤 하나 꽃샘 추위가 매섭습니다. 그 곳 여수의 봄은 어떤지 궁금하군요.문득 여수행 완행열차의 낭만을 꿈꿔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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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순 |
18-04-09 0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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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님,요즈음 좋은 글 많이 쓰시는 군요. 그만하면 준수하신데, 뭘 더 바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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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8-04-09 1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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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님, 여전하시지요? 요즘 세상이 하수상하여 눈 밝을 때 글이나(?) 써놓을까 하다보니 그럭저럭 올리게 됩니다. 부족하지만 이해하시옵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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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애 |
18-04-18 1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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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지금도 멋지고 고우세요. 저도 증명사진 찍고 보정을 한 사진을 보면 마음이 씁쓸했지요. 평소 화장을 하지 않고 가꾸지 않아 잡티도 많고 누리끼리한 얼굴이 부끄럽지요. 얼굴은 나이들어가니 그러려니 하는데 마음에 주름살은 빨리 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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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8-04-18 2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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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애 선생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거기에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한결 신선해보이십니다. ㅎㅎ. 건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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