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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승애 |
날짜 : 18-03-15 22:14
조회 :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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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와 거울
이 승 애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찾아간 대부도의 바다는 숨 가쁘게 뒤척이지도 보채지도 않았다. 연인에게 이야기하듯 조곤조곤하다. 무수한 생명체를 품은 갯벌은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채 꿈을 꾸듯 누워 있었다.
숨 한 번 고르지 못하고 달려온 삶에 쉼표를 찍는 순간이다. 숨통이 트인다. 내 일상은 시계불알처럼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규칙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기쁨이 목울대를 타고 키득키득 올라온다. 어머니 또한 고립된 일상에서 벗어나셔서인지 한껏 부풀어 오른 꽃봉오리 같으시다.
해변을 걷다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비릿한 바다냄새와 솔 향이 어우러져 마음을 간질인다. 가슴에 갇혀있던 언어들이 꽃잎처럼 피어난다. 수첩을 꺼내 피어나는 꽃잎을 붙잡아본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여유인가. 부드러운 자연의 숨결을 들으며 누운 이곳, 누구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 아늑하고 편안하다. 늘 말썽부리던 어머니의 심장도 자연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부드럽고 활기차게 움직인다. 집에서 준비해온 과일과 음식을 꺼내 솔바람, 꽃잎과 함께 먹었다. 참 맛있다. 천하를 얻은 듯 흐뭇하다.
달콤한 명상에 잠겨있는 그때 하필이면 아저씨 한 분이 나타났다. 나는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반갑지 않아 눈인사만 겨우 하고 시선을 피해 딴청을 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넉살 좋게 한 자리 차지하곤 커피 한 잔까지 청한다. 마지못해 커피 한 잔을 대접하고 그가 떠나길 바랐지만, 그는 막역지우莫逆之友라도 만난 듯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소소한 자신의 신변이야기에서부터 자녀 자랑까지 늘어놓더니 내 가족 신상명세서까지 꿰려고 하였다. 낯선 남자의 수다가 마뜩찮아 은근히 돌아앉았다. 머쓱해진 그가 엉거주춤 일어나는 시늉을 하다 다시 주저앉아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묻는다. 목적지도 계획도 없는 낭만 여객이라 하니 그는 이곳저곳 볼거리, 즐길 거리를 추천하였다. 집요하게 달라붙는 그를 떼어내려고 풀어놓은 짐들을 주섬주섬 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나 딱히 정해진 곳이 없어 그가 추천해준 곳 중 유리섬(유리공예박물관)으로 향하였다. 유리섬은 생각보다 훨씬 환상적이고 아름다웠다. 야외 유리조각공원에는 동물과 영화 등 다양한 소재로 한 조형물이 자연과 공존하며 시적 풍경을 이룬다. 해변 산책로엔 영화 속 주인공들의 러브스토리를 소재로 한 다양한 조형물이 전시되어있는데 바다와 갯벌, 햇살이 어우러져 낭만적이다. 해변에서 만났던 그의 투박한 웃음이 귓전에 울리다 유리 속으로 스며든다.
미술관 내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바다의 여신상이 먼저 푸근하게 맞이해준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유리의 변신은 더욱 화려하고 다채롭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꿈을 꾸는 듯한 새의 무리, 아기자기한 버섯 동산과 동화 속 주인공들이 해맑게 웃으며 맞이한다. 맑고 투명한 그들이 자분자분 들려주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즐겁다.
투명한 유리 속에는 서로 다른 색과 색이 조화를 이룬다. 마치 사이좋은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정겹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서로 포옹하듯 다층으로 중첩하여 만든 작품에선 깊이감과 리듬감이 느껴져 더욱 풍요롭다. 유리의 차가운 기질은 온데간데없고 부드럽고 살갑기만 하다. 유리라는 매체를 통해 빛과 색채가 어우렁더우렁 어우러져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유리의 내밀한 숨결을 따라 걷다 무심코 들어선 미로의 방은 사방이 거울로 된 곳이었다. 순간 방향을 잃고 말았다. 지금까지 취해있던 아름다운 환상이 쨍하고 금이 갔다. 출구를 찾으려 애썼지만,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빠져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거울은 짓궂게 달라붙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칭얼대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듯 놓아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멈추어 섰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거울은 매일 내 곁에서 은밀하고 다정하게 비춰주던 모습과는 달랐다. 내면에 깊숙이 숨겨진 마음을 거침없이 끄집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겁이 덜컥 났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가슴이 뛰고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숨을 고르고 고해성사를 보듯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미움도, 질투도, 걱정도, 후회도 내려놓았다. 그러자 으르렁거리던 거울이 순한 얼굴이 되어 싱긋이 웃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였다.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졌다. 조바심을 낼 땐 보이지 않던 출구가 보였다.
유리와 거울은 하나의 물체이면서 서로 다른 의미를 준다. 유리가 화합과 조화를 추구한다면 거울은 나를 바르게 보게 하는 진실의 도구다. 오묘한 두 개의 세계 속에서 부모형제, 이웃뿐 아니라 해변에서 만난 그처럼 낯선 사람의 따뜻한 마음까지도 함께 투과되고 굴절되어 하나의 세상을 이루는 것을 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지루하고 번잡한 일상에 지쳐 하냥 처져 있던 마음 한구석에 무지갯빛 유리 한 조각 어우렁더우렁 살갑게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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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8-03-15 2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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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삶의 진리를 찾아내는 선생님의 혜안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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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애 |
18-03-16 2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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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공예 예술을 통해 새로운 체험을 했지요. 어느 날
문득 일상의 작은 것에 눈을 뜨게 될 때 때낀 마음이 정정화되는 것 같습니다. 낯선 곳에서 큰 선물을 받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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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8-03-15 2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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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애 선생님 ! 저도 바다를 좋아하는데 아직 대부도를 가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대부도를 찾고 싶어집니다. 일상속에서 누리는 행복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이승애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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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애 |
18-03-16 2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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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대부도는 아름다운 곳이예요. 해솔길도 잘 되어있어요. 꼭 가 보셔요. 유리섬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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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택 |
18-03-15 2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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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님의 글을 작가회 공간에서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그동안 극히 일부 회원님들만 방문하는 것 같아 아쉬웠는데 이 선생님의 등장으로 신선한 느낌입니다. 앞으로 작가회의 활기넘친 작품발표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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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애 |
18-03-16 2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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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부끄럽던 마음이 덜해집니다. 가끔 글 올리면 많이 지도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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