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뎅이

먼 옛날, 나는 그 싸움판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데도 승부의 결과와 상관없이 매번 그곳에 뛰어들곤 했었다. 싸움은 언제나 나를 흥분시키고 긴장시키는 가장 멋진 놀이였다. 이상(李箱)은 시골 농촌 애들이 권태의 극한 상황에서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인 듯 묘사했지만 내 어린 시절은 풍뎅이와의 싸움판으로 날마다 즐거운 꿈으로 가득했었다.

  나는 매번 승자가 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는 했어도 경마장의 도박판처럼 한 번 재미를 붙이면 그만 두지 못하는 매력에 빠져 있었다. 내가 경기장에 내보내는 선수는 딱정벌레목 곤충인 풍뎅이였다. 다리를 한 마디씩 떼어내고 목을 빙빙 돌린 다음 등을 땅바닥으로 향해 놓고 동그랗게 그린 원형 경기장가운데 눕혔다. 경기장에 끌려 나온 풍뎅이들은 일제히 날개를 파닥이며 땅 위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날개를 세차게 돌릴수록 아이들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고조되어 한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뜨거웠다. 그리고 누구의 풍뎅이가 육신의 고통을 버티며 미련하게 붕 붕 붕 날갯짓을 오래하느냐에 따라 승부를 결정했고 그것이 철부지 악동들의 하루 인생의 희로애락이었다.

  한 판 싸움의 승자에게 우리들은 그날의 대장 명예를 주었다. 대장의 임기는 단 하루뿐, 다음 날이면 우리는 다시 원형 경기장을 그리고 새로 잡아 온 풍뎅이 다리를 떼어난 후 땅위에 눕혀 놓고 일제히 합창을 시작하곤 했다.

  “앞마당 쓸어라, 뒷마당 쓸어라.”

  시합은 언제나 대장인 동환이의 신호로부터 시작되었다. 한낮의 햇살이 머리위로 뜨겁게 쏟아져 내려도 상관없었다. 오직 승패의 결과에만 몰두했다. 다리 끝이 잘리고 목이 한 바퀴 돌아간 아픔 속에서도 풍뎅이는 훨훨 날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버둥댔다. 허망한 꿈을 안고 뱅뱅 돌아가는 풍뎅이의 저항은 점점 고통으로 거칠어지고, 그럴수록 아이들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들떠 승패를 재촉하느라 땅바닥을 두드리는 손바닥이 아픈 줄도 몰랐다.

  언젠가는 나도 이길 수 있으리라고 다짐하며 내일 그리고 또 내일, 나는 사내애들 속에 섞여 끝 간 데 없는 싸움판에 달려들곤 했다. 짙은 청록색 날개를 쭉 펼치고 '붕 붕' 소리를 낼 때마다 마당의 작은 흙먼지들이 얼굴위로 풀풀 날렸다. 풍뎅이가 맴도는 궤도를 따라 아이들은 손뼉장단을 맞추느라 신명이 났다. 그런 아이들의 재미와는 상관없이 풍뎅이의 날개 짓은 허망한 죽음의 끝을 향해 세차게 퍼덕였다.

  로마 제국의 콜로세움이 그랬었다. 원형 경기장에 나온 검투사들은 아무리 잘 싸워도 결국은 그곳에서 죽게 되어 있었다. 로마 시민들을 흥분시키는 노리개가 되어 구경꾼들의 환성을 들어가며 노예와 죄수들은 싸움을 하다 처절하게 죽어갔다. 풍뎅이들의 운명도 그들과 같았다. 잘 싸워 이긴 놈도 결국 그곳에서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었다.

  마침내 풍뎅이의 움직임이 자자들기 시작하면 아이들의 목소리도 차츰 사위어갔다. 동그라미 안을 맴돌다 힘이 빠져 꼼짝할 수 없게 되면 풍뎅이는 서서히 죽음을 맞았다. 하나 둘씩 움직임이 멈추면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각기 집으로 돌아갔고 마을은 이내 고요한 어둠에 휩싸이곤 했다.

  아이들 세계에서도 승자는 군림했고 패자는 승복했다. 비록 미물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라 할지라도 진다는 건 역시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다. 그런 날이면 나는 공연히 영문도 모르는 엄마에게 심통을 부리는 것으로 패배의 분을 삭이곤 했다. 그것도 모자라면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메리(강아지)를 향해 냅다 발길질을 해댔다. 그리고 또 다시 아침, 눈 뜨기가 무섭게 '오늘은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찬 기대를 가지고 활엽수가 많은 뒤꼍 숲으로 풍뎅이 사냥을 나섰다.

  여름날, 학교 가는 일은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따가운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더운 날은 물론, 비가 억수로 쏟아져 내리는 장마철엔 더욱 더 그랬다. 햇볕 속에 오리를 걸어 학교 가는 일도 끔찍했고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땀범벅이 된 체 공부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는 내 맘은 아랑곳 않고 엄마는 빨리 일어나 학교가라고 내 이불을 잡아 재꼈지만 그럴수록 나는 집요하게 이불을 끌어당겨 뒤집어쓰곤 했다. 그렇지만 일요일엔 깨울 필요도 없이 식구 중 내가 제일먼저 일어났다. 그리곤 뒤 곁 숲으로 달려 나갔다.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풍뎅이란 놈들이 참나무 허리에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었다. 말벌과 사슴벌레들도 한 솥 밥을 먹고 있었지만 내가 필요한 건 힘이 가장 셀만한 풍뎅이를 나의 전사로 골라잡는 일이었다.

  다리가 굵고 금빛 광택이 짙게 나는 풍뎅이를 잡았을 때의 그 희열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증표여서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갇혀버린 풍뎅이는 괴로운 듯 연신 목을 비틀어 대지만 나는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그것을 더욱 옥죄었다. 그런 풍뎅이가 가끔은 가엾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엔 워낙 풍뎅이가 흔했던지라 생명이 귀한 줄도 몰랐다. 나의 놀이 사슬이 된 풍뎅이의 운명은 생명이기 이전, 나의 장난감으로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가끔 그 날의 기억을 되새기며 환청처럼 들려오는 풍뎅이 날갯짓 소리에 가슴이 아려 온다. 장난감이 된 풍뎅이들. 그것들은 얼마나 괴로워하며 죽어야 했을까. 죽음이 무엇인지,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할 까닭도 없이 놀이에만 치중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을 생각하면 나는 부끄러운 죄인처럼 정신이 아득해진다. 철없음의 잔학행위일지라도 그것이 과연 면책 사유가 될 수 있을까?

  철이 든 어른들은 어린 시절의 나처럼 유치한 장난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짓거리에 관한 한 어른들도 별로 다르지 않다. 승마, 투우, 투견, 닭싸움 등에 동원되는 장난감은 풍뎅이보다 비싸고 클 뿐이지 애들 장난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뿐일까? 애들은 심심풀이로 여치와 개구리와 잠자리를 죽이지만 어른들은 사람을 죽인다. 사상 이념 애국심등 이유야 어찌 되었든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것은 대개 아름답게 포장되기 마련이지만 풍뎅이를 죽인 것이 놀이였듯이 어른들도 때때로 전쟁에서 유희본능을 충족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30만 명 난징 대학살 때 백 명 목 자르기 경쟁을 벌인 두 일본군 장교의 학살은 너무도 유명한 학살 게임이다.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약자들에 대한 잔학행위를 애국 충성 정의감이란 용어로 포장한 놀이라고 하기엔 섬뜩한 일이다. 인류 역사에서 그런 잔학행위의 핏자국을 한 번도 남기지 않은 민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자나 호랑이가 약자를 잔인하게 물어뜯고 잡아먹는 것은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먹이사슬의 원칙으로 설명된다. 그렇지만 인간이 인간을 죽이며 차차로 이에 길들여지다가 조금이라도 쾌감을 맛본다면 그것은 먹이사슬 문제가 아니라 유희본능의 잠재의식이 작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는 철이 없어 풍뎅이나 여치나 개구리를 죽였다고 하더라도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른들이 지금까지 해온 전쟁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이상의 <권태>가 또 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 작품속의 아이들은 너무 심심해서 나란히 앉아 똥을 눈다. 차라리 똥 누기 놀이를 할망정 심심하다는 이유 때문에 풍뎅이의 목을 비틀고 다리를 꺾으며 놀지는 않았으니 참으로 착한 아이들이라고 해야 하나. 문학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평화의 전원 풍경인 셈이다.

  지금이라도 예전에 죽였던 풍뎅이 후손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시골어디를 가 봐도 그들을 만날 수도 없다. 그들의 멸종 위기에는 나의 유년기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그 옛날을 되새길 때마다 회한(悔恨)과 함께 조금쯤 가슴이 아려 오는 것은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아쉬움 때문은 아닌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