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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방주 |
날짜 : 15-10-25 23:31
조회 :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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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소리
미호천 자전거길을 달린다. 가을볕이 따사롭다. 둔치에는 억새꽃과 갈대가 한꺼번에 피어 오후의 기우는 태양빛에 반짝인다. 미호천美湖川이란 이름만큼 아름답다. 바람이 상쾌하다. 기어를 최대로 올렸다. 속도가 빨라지니 바람이 아직은 푸른 버들잎에서 푸름을 묻혀오는지 더 시원하다. 그런데 자전거가 '우잉우잉'하며 모기소리를 낸다. 아, 낡은 기계에서는 모기소리가 나는 것인가. 바로 그 모기 소리다.
젊은 나이였던 마흔다섯쯤에 왼쪽 귀에서 모기소리가 났다. 밤이나 낮이나 '우잉우잉'하고 울어대는 모기소리가 성가셨다. 그로부터 10년은 족히 이비인후과에 다녔다. 귓속에 살림을 차린 모기들은 겨울에도 죽지 않고 울어댔다. 병원에 다녀오는 날은 오히려 더 심했다. 모기 가족이 '우잉우잉 오엥오엥 윙윙'하고 야단법석을 열었다. 쉰 넷에 이르러 이 나라 최고 명의만 모여 살아간다는 대학병원 젊은 여의사에게 귀를 보였다. 꼭 칠성판 모양의 수레에 태워 불가마 같기도 하고 굴속 같기도 한 곳에 들여 넣고 온갖 사진을 다 찍어대더니 하는 말이 기막혔다.
"그냥 사세요. 연세도 있으신데……. 신경이 죽었네요. 재생 불가예요."
'겨우 그 말하려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찍어댔냐?'
내게는 낯선 '연세'라는 말이나 무책임한 ‘그냥’이라는 말에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래! 덜 들으며 그냥 살자. 들어도 못들은 체해야 하는 나이가 아니냐? 누구 말마따나 연세도 있는데……. 오른쪽 귀로 오른 소리만 듣고 살자. 아니 옳은 소리만 듣는 거야. 나는 오른 소리와 옳은 소리를 혼동하기는 했지만 절망적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때는 빨리 수긍하는 것이 낫다. 성깔을 죽이며 착하게 살았다.
세월이 지나고 또 지나 환갑을 넘기니 이번에는 왼쪽 눈앞에 모기 두세 마리가 날아다닌다. 처음에는 왼손을 들어 쫓으려 했지만 손짓만으로 쫓겨날 모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점점 왼쪽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시내에서 제일 용하다는 안과를 찾아갔다. 진짜 원장님은 만나지도 못하고 서른을 갓 넘은 젊은 원장을 만났다. 내 하소연을 듣고 복잡한 기계에 눈을 대게하고 잠깐 들여다보더니 너무나 가볍게 한 마디로 선고를 내린다.
"그냥 사세요. 연세도 있으신데……. 치료 방법이 없어요. 그냥 사세요."
책임감 없는 교사가 학생을 '문제아'로 낙인 찍듯이 의사들은 '연세'를 핑계로 ‘그냥’이란 처방 내리기를 좋아한다. 그래! 덜 보며 대충 살자. 오른쪽 눈으로 오른쪽만 보고 살자. 아니 옳은 것만 보는 거야. 나는 또 오른쪽 것과 옳은 것을 혼동하기는 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보이는 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순하게 살았다. 그야말로 귀도 눈도 착하디착한 이순耳順이라는 연세가 된 것이다.
이렇게 살다가 오른쪽 소리만 들리고 오른쪽 세상만 보이면 어쩌지? 아니, 왼쪽 소리도 왼쪽 세상도 다 오른쪽 세상으로 인식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순耳順이라는 연세 값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균형을 잃다가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순의 나이에 철이 든 사람처럼 순하게 사는 것도 좋겠지만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아,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전거를 타는구나.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우려고 자전거를 타는구나. 나도 자전거를 한 2년 타 보았다. 종아리가 탱탱해지고 허벅지도 탄력이 생겼다. 왼쪽 눈앞에 어른거리던 모기가 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왼쪽 귀에 살림 살던 모기소리도 드물어졌다. 자연스럽게 균형 잡는 일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무심천이 미호천에 합류하여 호수가 된 까치내에 거꾸로 잠긴 억새꽃 갈대꽃이 가을 오후의 햇살을 받아 윤이 난다. 기어를 최대로 올리고 허벅지에 힘을 주어 페달을 밟으며 균형 잡는 방법을 배운다. 인제는 어느 정도 속력을 낼 수 있다. 곧은길에서는 더 세게 밟는다. 낡은 자전거가 새것보다 더 부드럽게 속력을 낸다. 그런데 자전거가 '우잉우잉 오엥오엥' 모기 울음소리를 낸다. 모기란 놈은 연세 드신 자전거에까지 따라와 운다. 나 때문에 낡아버린 자전거가 안쓰럽다. 이놈의 모기, 때려잡으려다가 갑자기 '모기 시아버지와 모기 며느리'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만두었다.
옛날에 모기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모기 며느리가 있었다. 하루는 저녁때가 다 되었는데 시아버지가 외출을 준비하면서 며느리에게 일렀다.
"아가 내 저녁일랑 차리지 마라."
"왜요? 아버님"
"좋은 사람 만나면 실컷 빨아 먹어 배가 터질 테고, 모진 놈을 만나면 맞아서 배가 터져 죽을 테니, 저녁상이 무슨 소용이겠느냐?"
시어머니와 남편까지 모진 놈에게 맞아 사별한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외출을 말렸다.
"아버님 언짢으시면 나가지 말고 집에서 드셔요."
시아버지 모기가 운명에 순응하는 모습도 그렇고, 며느리의 효심도 그렇고, 하찮은 모기소리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도 다 나를 스산하게 한다.
요즘 신세대 못된 모기 며느리 같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알겠어요. 연세도 있으신데 그냥 가셔요. 모기 운명이란 어차피 그런 것 아녜요?'
아마도 이렇게 답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서늘하다. 맞아, 나이도 있는데 그냥 살자. 웬만한 건 보려 하지도 들으려 하지도 말자. 차라리 들리지 않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마음의 귀를 열고 눈을 돌리자. 그리고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모기소리 같은 것에서 의미를 찾자. 이순이 아니냐. 위대한 이순耳順…….
(2015.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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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5-10-27 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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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타기를 하신다니 반갑습니다.
저도 자전거타기를 한지 이태가 되었습니다.
매일 한시간씩 도로주행을 하는데 이만한 운동도 없은것 같습니다.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귀에서 들리는 모기소리에 눈에 어른거린 모기까지 나이들어가는 과정이기는 하지만
그 의사도 참 무책임한것 같습니다.
질병을 이기는 방법은 그 질병과 친구가 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려려니 하고 사는 수 밖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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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5-10-27 0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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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안녕하셔요.
어느 도시든 그렇겠지만 저희 고장 청주는 무심천에서 미호천 금강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길이 잘 되어 있습니다. 매일은 어렵지만 하루에 2~3시간씩 자전거를 탑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운동으로 최고입니다. 모기를 쫓는데 운동이 제일이고요.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절기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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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5-10-27 0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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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시아버지와 모기 며느리' 이야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귀와 눈이 그래서 얼마나 걱정이 되고 불편하셨는지요!
청주 무심천에서 미호천 금강으로 자전거 길이 열려있으니
건강 장수 만세가 절로 외쳐지겠군요!
요즘 저는 허리가 아파 매일 병원을 다니고 있어
건강의 소중함을 반추하게 됩니다.
자전거 잘 타시고 건강하시어 또 좋은 글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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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5-10-27 1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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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섭 선생님 안녕하세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눈은 시중에 알려진 눈 영양제 토**이란 걸 한달 먹으니까 싹 나았어요.
귀는 은퇴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소리가 아주 작아졌어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나름대로 건강을 지키고 덜 듣고, 덜 보고, 덜 말하고, 덜 먹는 것이 생활의 지혜라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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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15-11-02 1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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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직 청춘이십니다.
부지런히 운동하시면서 건강을 회복해 가시니 큰 박수를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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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5-11-03 1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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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나이 타령을 했군요.
모든게 순리고 섭리라 거스를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의 귀와 눈을 더 기울여야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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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보 |
15-11-03 0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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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의 <더욱상>을 읽으며 선생님의 <모기소리>에서도 나이, 연륜 등에 관한 같은 느낌이 들어 같은 똑같은 내용의 글을 남깁니다.
나름, 제가 무언가를 시작하려들면 "갈 때 가져갈 것이냐"며 초를 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앞장서는 사람은 바로 마누라이지요. 나이를 생각해 보라는 거지요. 선생님의 <더욱상> <모기소리>에서 힘이 솟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나이나 시기 상관없이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지만 제지를 당할 때 마다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분의 말이 떠오르기도 하구요. 저는 가지고 가기 위한 것이 아니고 구태여 이유를 들라면 <남겨두고 가고 싶은 것>이거든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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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5-11-03 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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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보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세요?
나이 들면 그에 맞게 세상을 덜 보고 덜 듣고도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선생님 말씀처럼 날마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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