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겨울을 지내려면 훈훈한 난로와 두툼한 옷 그리고 따뜻한 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날씨가 추우면 왠지 마음도 써늘해진다. 밖에 나가서 햇볕도 쪼이고 활동을 해야 생기가 도는 법인데 집안에만 틀어 박혀 있게 되니까 의기도 소침해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봄이 오는 기다림이 있으므로 긴 겨울을 견딜 수 있지만 일 년 내내 겨울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무슨 희망으로 사는지 안쓰럽다는 생각이다.

소한이 지나고 아직 대한을 앞두고 있는 정이월(正二月)만 되어도 남쪽에는 어름을 깨고 흐르는 강가에 버들강아지가 피었다고 요란하다. 그만큼 봄을 기다리는 마음들이 바쁘기 때문이다.

어느새 우수와 경칩을 지나 기다리던 봄이 왔다. 봄이라는 말은 아프리카 르완다어 중에서 VOMA 가 그 어원이라고 한다. 물이 오른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무와 꽃에 물이 오르니 활짝 피고 사람도 물이 오르므로 생기가 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잠자고 일어나서 창문 밖으로 새초롬하게 피어난 산수유를 보고 갑자기 가슴이 설렌다.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곧이어 노란 개나리가 피고 하얀 목련이 피고 질 무렵이면 벚꽃의 화사한 모습이 봄의 절정을 알린다. 냇가에는 이팝나무까지 피어 화려한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사람들도 손에 손을 잡고 봄나들이하면서 물이 오른 봄을 만끽하고 다음 겨울이 올 때까지 삶의 활력소를 얻는 것이다.

벚꽃의 화사함은 아름다운 여인을 연상시킨다. 봄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은 가냘퍼서 애잔한 느낌마저 준다. 삶에 지친 사람에게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 고마운 꽃이다. 매일 매일을 화사한 벚꽃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시름도 근심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을텐데 그리 오랜 시간을 버티지는 못하고 아쉬움을 남기고 사라져 간다. 낙엽 떨어지듯이 하얀 꽃비를 흩뿌리면서 말이다.

노환으로 요양중인 구순의 할머니가 유달리 벚꽃을 좋아하여 잠시 지나가는 꽃이라 벚꽃이 지더라도 상심하지 말라고 했다. 내 마음 또한 할머니 마음처럼 벚꽃이 한 달이라도 계속 피어서 그 화사함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할머니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기만 해도 벚꽃이 떨어지지 않고 잘 버텨주기를 기원하며 연신 창밖으로 눈길을 준다. 그 모습이 혹시라도 벚꽃이 지는 것과 삶의 끈을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그럴 때면 강한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던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벚꽃 잎들을 묶어 놓고 싶다.

요양원을 나오는 길에 한 무리의 초등학생 아이들을 만났다. 길가에 피어 있는 벚꽃 나무들을 보면서 갑자기 아이들에게 묻고 싶은 생각이 났다.

“애들아. 저 벚꽃 나무 예쁘지?”

“네. 예뻐요”

“그런데 저렇게 예쁜 벚꽃이 지면 슬프지 않겠니?”

“아니요. 벚꽃이 지면 연산홍이 피어서 더 예뻐요.”

아이들은 노인과 달리 벚꽃이 지는 상심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