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한학에 조예가 있는 친구를 만났는데 요즘 불경기에 얼굴을 펼 날이 없다고 하면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문자를 던졌다. 그러자 친구왈 춘춘 추도심(春春秋倒心)이라고 화답한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봄은 봄이로되 가슴은 가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부에서는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 하나 서민이 부딪치는 느낌은 가을도 아니고 아직 겨울이다. 그래서 생활에 쫒기는 셀러리맨이나 주부들의 근심이 수그러들지를 않아 세상이 우울하게 보이고 이곳저곳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생기고 있다.

 그러나 어느새 계절은 무심하게도 봄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로 날씨가 화창하다. 3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내렸다. 환승계단에 이르렀는데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등에는 갓난 아기를 업은 젊은 부인이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가 있었으나 유모차를 태워서 올라 갈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계단으로 올라가자니 그 숫자가 수십계단이 되어 아기 엄마가 들고 올라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 한분이 저쪽으로 돌아가면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가르쳐 주었으나 저쪽이 어느 쪽인지 알지를 못해 안절부절하는 것이었다. 나라도 도와줄까 생각했지만 유모차를 들고 수십계단을 오른다는 것은 너무 힘들고 엄두가 안나서 아이 엄마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섰다. 주변에 젊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모두들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모른체하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는 것이었다.

 그때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 그 아기 엄마에게 다가가서

“ 아주머니, 아이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로 올라 오세요” 하더니 유모차를 번쩍 들고 가파른 수십계단을 성큼 성큼 올라가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 무심하기만 하던 얼굴에 미소를 머금는 것이었다. 나 또한 그 청년에게 박수라도 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자랑스럽게 보였다. 청년의 조그만 용기가 지하철 모든 승객들에게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따뜻함을 선사해준 것이다. 삭막하기만한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훈훈한 정을 느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청년의 선행을 보면서 아직은 이세상이 살맛이 나고 희망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춘래 불사춘이라는 어줍잖은 불평을 늘어놓기만 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지는 것이었다. 나이를 먹기는 했지만 그 젊은 청년같이 남에게 베풀지도 못하고 불평이나 늘어놓는 수양이 덜된 자책이 생기는 것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도 흐뭇한 기분이 가시지를 않았다. 산수유가 활짝 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우울한 마음도 가시는 것 같았다. 마침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했다. 봄은 역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