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회 신입회원 가입 안내 |

나는 요즘 8년간 써 놓았던 ‘할미의 육아 일기’를 퇴고하면서 아이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던 때를 떠올리며 혼자서 “쿡! 쿡!” 웃는다.
다음은 외손녀 세 살 때, 써놓았던 일기다.

  결혼한 딸애가 직장을 나가 손녀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내가 데려다 키우고 있다. 사랑스러운 손녀를 품에 안고 있으면 내배 아파 난 아이처럼 애틋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 살인 아이는 어미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 주말에만 제 부모가 데려가니 아이가 집에 가서도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운다며 딸애는 서운해했다. 그때 나는 "도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엄마 정을 알아, 내가 아무리 잘해줘도 할미는 뒷전이 될 거라"고 위로했다.

  어느 봄날, 아이를 데리고 자주 가는 망우산으로 산책하러 갔다. 그곳엔 공동묘지가 있어 완만하게 경사진 5km 회람도로가 있다. 그 길은 세 살배기가 끝까지 걷기엔 벅차므로 남편은 빈 유모차를 끌고 천천히 뒤따라오고, 나는 손녀의 손을 잡고 동요를 부르며 앞서간다. 발걸음도 가볍고 마음도 즐겁게. 
  걷다가 길가에 핀 풀꽃을 따서 손녀 손에 쥐여준다. “함머니(할머니) 꽃! 꽃!” 하며 활짝 웃는다. 다람쥐나 산새들을 만나면 잠시 멈춰서 “도현아 다람쥐가 인사 하네! 새들이 노래하잔다!”라고 호기심을 자극하면 관심을 두고 유심히 본다. 내가 쉴 새 없이 지껄이는 것은 아이가 말도 빨리 배울 수 있고 사랑의 교감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귀가해서 저녁상을 물리고 손녀와 호랑이 놀이를 했다. 호랑이는 본래 맹수지만 옛날부터 민담이나 민화 속에 많이 나오는 우리 민족과 친숙한 동물이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가 저도 거들겠다며 의자를 질질 끌어다 싱크대 앞에 놓고 올라서려고 했다. 세 살짜리가 무슨 설거지를 한다고! 아무리 말려도 듣질 않았다. 난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내 입을 쫙 벌리고 집게손가락으론 눈꼬리를 내리며 "어흥! 어흥!"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아이는 걸음아 날 살려라. 거실로 달려가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는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겼다.

내가 이내 돌아서 주방으로 오는 동안 아이는 조금 전에 내 행동을 흉내 내며 내 뒤를 쫓아오는 게 아닌가. 나는 기겁을 하며 무섭다고 도망을 쳤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손녀는 깔깔대며 계속 따라오다가 방향을 할아버지한테로 돌렸다. 할아버지도 무섭다며 달아나는 시늉을 하자 까르르 웃으며 뒤로 넘어갔다.
  바로 그때 남편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도망을 가다가 돌아서 어흥 거리며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아이도 물러서지 않고 덤볐다. 셋이서 으르렁거리다가 서로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배꼽을 쥐며 나둥그러졌다. 할아버지 호랑이, 할머니 호랑이, 손녀 호랑이가 한바탕 눈물 나도록 웃었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다 보면 나도 동심으로 돌아가 세상 근심 다 내려놓은 사무사(思無邪)가 된다. 그렇게 재미나는 호랑이 놀이가 끝나면 아이는 꿈나라로 갈 시간이 된다.

  우리 내외는 늘 하던 습관대로 손녀를 가운데 눕히고 마주 보며 동요 ‘섬 집 아기’를 자장가로 불러주었다. 손녀는 따라 부르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아이는 가끔 잠꼬댈 할 때가 있다. 낮에 놀던 일들이 꿈속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오늘 밤 손녀는 호랑이놀이 꿈을 꾸지 않을까.
  아이가 잠든 뒤에야 살며시 일어나 못 다한 일을 끝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육아 일기를 쓴다. 

  고 어린 손녀가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손녀와의 추억을 되돌아보니 우리가 아이를 키운 노고보다도 손녀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제는 인터넷 문학 서재에 묻어두었던 ‘할미의 육아 일기’를 퇴고해 예쁜 책으로 엮어 선물로 주며 “네가 우리 곁에 있어주어 행복했다”라고 말해야겠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가 사랑을 베풀 줄도 안다. 손녀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기에 장차 사회에 귀한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