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갑니다” 아니면 “벌써 가세요?” 이 말은 아침마다 헬스장에서 회원들끼리 나누는 인사말이다. 탈의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사람과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려는 사람이 서로 발가벗은 몸으로 격의 없이 나누는 대화이다.
가끔 남녀 각각의 전용 헬스장 같으면 옷을 갈아입는 번거로움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동성끼리면 발가벗고 운동을 하면서 뱃살이든 허벅지살이든 어느 곳을 단련시켜야하는지 서로 봐주기도 하고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모두 몸에다 무엇이든 걸치고 뽐까지 낸다.
전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교육헌장을 달달 외우던 기억이 난다. 비록 정신적으로는 그런 사명을 안고 태어났을지라도 신체적으로는 발가벗은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서 떠날 때도 발가벗은 몸으로 가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무슨 옷 들을 철따라 해 입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일테니 동성끼리 살면 그런 부담에서 해방되지 않겠는가.
친구가 어제 먼저 갔다. 영국제 기지로 말쑥하게 차려입은 옷도 다 벗어놓고 맨몸으로 발가벗고 가버렸다. 헬스장 이야기가 아니라 영안실 이야기다. 친구는 먼저 간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전 같으면 무엇이 그리 바빠서 벌써 가냐? 할 텐데 한 살을 더 먹어서 그런지 무덤덤하게 이제 가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조금 있다가 나도 갈테니 자리 잡고 있어라 하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잘 가라고 내가 말해 놓고도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그 와중에서도 쓴웃음이 나온다. 갈 곳 없는 영혼이 되어 구천을 헤매지는 않겠지 하는 믿음이 있으니까 무의식적으로 잘 가라고 한 것 같다. 나도 약간은 놀랐다. 아직은 겸손하지 못해서 그런지 친구나 나나 종교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잘 가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나오니 말이다. 종교적인 믿음이 있어서 천국으로 가던지 아니면 새 같은 다른 동식물로 환생할 것을 굳게 믿을 수 있다면 가는 길이나 보내는 마음이 조금은 편안할 것 같다. 영혼이 있고 영혼이 어딘가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믿음이 있으면 가는 길이 불안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믿습니까? 하는 소리가 귀에 울린다. 영생하는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느냐는 물음같다. 하나님을 믿느냐는 물음같다. 환생을 믿느냐는 물음같다. 영혼이 있다고 믿느냐는 물음 같다. 준비 되어 있지를 않아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다만, 영안실을 올 때마다 한사람씩 떠나 보내면서 영혼이라도 있어야 슬픔이 작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화장할 때 혼 불이 되어 타 버리는 것은 이승에 올 때 걸친 육신일 뿐 영혼은 영원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친구가 제단에서 먼저 갑니다 하고 웃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