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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창식 |
날짜 : 13-09-07 09:29
조회 : 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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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쩌렁 쩌렁 쩌르르릉~." 매미 한 마리가 베란다 창에 붙어 줄기차게 울어댄다. 속적삼 같은 투명한 날개에 도랑 같은 실선이 대칭으로 그어져 있다. 매미가 날개를 바르르 떤다. 매미의 날개는 강철로 만들었나 보다. 발성기관이 따로 있다고 하지만 날개를 비벼 화통 소리를 내는 것 같다. 생각보다 몸피가 큰 매미는 유전자가 변형된 슈퍼파리처럼 보인다.
참매미, 말매미, 유지매미, 쓰름매미…. 매미는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면 곤충채집 대상 1순위였지만, 나비나 잠자리와 달리 도통 곁을 주지 않았다. 뭉게구름 떠 있는 푸른 하늘과 미루나무 어디쯤엔가 달라붙은 매미는 여름날의 그리운 풍경이자 표상이었다. 유년의 매미 소리는 따갑지 않고 귓바퀴에 날아와 앉았다. 조신하고 청량했으며 처연하기까지 했다. "맴 맴 매앰~. 쓰름 쓰름 쓰르르름~."
요즘의 고집불통 매미는 그악스럽게 울어대 '매미와의 전쟁'을 치르는 듯하다. 매미는 무소불위로 운다. 새벽에도 울고 비가와도 울어재낀다. 소리도 쩌렁쩌렁해 관악기와 타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 연주를 듣는 것 같다. 시도 때도 없고 쉼도 없이 귓속을 찔러대는 매미 소리로 밤잠을 설치는 것이 도시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되었다. 하긴 매미가 밤낮을 구분 못하는 것은 주변이 인공조명으로 밝아진 때문이라고 하니 매미만 탓할 일도 아닌 성 싶다.
천덕꾸러기 매미지만 하필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 반갑다. 매미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여름 한 철을 나기 위해 3~7년간을 땅속에서 애벌레로 지낸다고 한다. 여름이 지나면 매미는 껍질로 남으리라. 매미는 그런 찰나의 삶이 억울해서 피를 토하듯 절규하는 것일까? 암흑 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매미의 삶을 떠올리며 숙연해 지던 차 엉뚱한 생각이 든다. 이 매미가 진짜 매미일까?
며칠 전 집을 나서는데 우편함을 비집고 나온 소포가 보였다. 누가 책을 보내온 것 같았다. 30분이 채 걸리지 않아 돌아와 보니 우편함이 비고 봉투가 사라졌다. 경비아저씨는 CCTV로 찍어둔 화면을 틀어보면 상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일을 크게 벌여 법석을 떠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궁금했다. 책을 가져갔을 누군가에 대한 불쾌함이 고개를 쳐들기도 했다.
아파트 관리실에 앉아 자리를 비운 시간대에 맞춰 녹화 테이프를 돌려보니 각종 군상들의 들고 나는 모습이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다. 사건이 벌어졌음직한 시간대가 가까워오자 얼굴이 따갑고 스멀거렸다. 석연치 않은 기분은 줄곧 느꼈던 듯하다. 문제의 인물이 나타났다. 안면이 있는 위층에 사는 중년 남자였다. 그는 우편함 앞에서 잠시 주뼛거리더니 책을 꺼내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예상했던 일이 막상 현실로 나타나자 실감이 들지 않았다. 무언가 알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데 하는 야릇한 기분으로 혼란스러웠다.
경비아저씨와 대책을 논의했다. 서로 아는 터에 얼굴을 붉히며 곧바로 인터폰으로 연락을 취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에게 모멸감과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그것이 더불어 사는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처럼도 여겨졌다. 나는 아저씨에게 전체 입주민을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고지해주도록 부탁했다. "혹 수취인 불명으로 잘못 배달된 소포가 있으면 경비실로…."
집에 들어와서도 무언가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진해졌다. 알량한 호의를 베풀어 도덕적 우위에 섰다는 자기만족에서 오는 자격지심 때문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마뜩치 않은 기분은 화면을 틀 때부터 느꼈던 것이니까.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폐쇄회로 화면을 되감아 보았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여닫히고 사람들이 무언의 피사체가 되어 오갔다. 내 모습이 보이더니 곧 프레임 밖으로 사라졌다. 화면이 흔들리며 검게 변했다.
이제 그 사람이 나타날 차례다. 순간 어떤 생각이 스쳤다. 나는 얼른 장면을 되감아 틀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내가 나타났다. 우편함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현관문을 나선다. 그 모습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그렇구나. 화면 속에 벌거벗은 내가 있었다. 내가 남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동안 누군가는 내가 모르는 사이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놓아주지 않던 찌꺼기 같은 감정의 정체가 그것이었다.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으로 여겼던 내가 실은 감시의 대상이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반담이 설계한 원형감옥 파놉티콘(Panopticon)이 생각난다. 중앙에 높고 어두운 감시탑을 세우고 바깥의 원 둘레를 따라 죄수들의 방을 밝게 만들어 죄수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고안했다는 감옥이다. 현대인의 운명이 원형감옥의 수인(囚人)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이 누군가에 의해 관찰되고 있다. 거리를 걷든, 편의점에 들르든, 백화점을 방문하든, 지하 주차장에 가든.
창에 붙은 매미의 모양을 관찰한다. 쌍안경 같은 두 눈이 잇대어 있고, 날개에 찍힌 선명한 두 줄 무늬는 전자회로를 연상시킨다. 매미의 모습이 정교하고 그럴 듯해 오히려 가짜처럼 보인다. 짝퉁이나 모조품이 더 정품처럼 행세하여 진품의 정체성이 오히려 의심받는 아이러니라니. 조작된 가상현실이나 현실에 가상현실을 덧씌운 증강현실이 실제보다 더 큰 영향력으로 실재현실을 대체하는 시대가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매미가 짧은 다리를 꼼지락거린다. 설핏 의심이 든다. 이 매미가 마이크로칩을 내장한 무인조종 로봇 매미가 아닐까? 매미가 아기처럼 울음을 뚝 그치더니 놀란 듯 방충망을 떠나간다. 촬영 임무를 완수하고 기지국으로 귀환하는 모양이다. 매미는 도회의 빌딩 숲 사이로 사라져 간다. 나는 빈 허공으로부터 눈길을 돌린다. 매미가 유년(幼年)의 여름 숲을 향해 날아가기를 바라면서.
* <<에세이문학>> 2013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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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3-09-07 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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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하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 많이 벌어지니 위층에 사는 중년 남자도 죄의식없이 무심결에 책을 가져간 모양입니다. 책을 읽고 양심가책을 느껴 김창식님에게 칠배나 갚아주기를 기원합니다. 대다수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꼭 이런 사람들이 가끔 나타나 실망을 줍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을 구정물로 만들었군요! 좋은글 잘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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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3-09-07 1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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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책을 말없이 가졋간 것은 좀 그렇지만 책을 읽지않는 시대에 책을 읽겠다고 가져간 것은 어찌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용서하기로 했으면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쩌렁 쩌렁 쩌르르릉~."하고 우는 매미는 말매미가 아닌가 합니다. 참매미는 '삐쵸시 삐쪼시'하고 운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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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3-09-07 1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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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섭 선생님과 임병식 선생님의 조언과 따뜻한 위로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책 분실건은 저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감시 받는 우리 모두의 민낯을 본것이니까요.
옛 매미는 고상한 곤충이었는데, 요즘 도회의 말매미는 개구리 울음을 내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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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3-09-08 0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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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식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교도관 시절이 떠오릅니다. 서울구치소 수용자 운동장이 그렇게
원형감옥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중앙에서 운동하는 수용자들을 감독하기 위해서 그렇게 지어졌습니다. 매미울음소리는 고향의 울음소리입니다. 이제는 폐교가 되고 "해남 청소년 수련원"이 된 초등학교 앞 미루나무 그늘아래 매미소리 들으며 호박곤 말곤 두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감사합니다. 김창식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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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3-09-08 1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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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께서 그런 경험을 하셨으리라 짐작합니다.
반담의 원형 감독은 나중 푸코가 '내재적인 규율'을 설명, 인용하여 유명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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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3-09-08 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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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더니 메미소리가 뚝 그쳤습니다. 어제는 소수서원에 갔더니 메미가 벌렁 땅 누워 있어 건드리니 프르륵 날아 가던데 힘이 없이 죽어가는 매미였어요. 그 매미에 대한 글을 쓰려고 자료 준비하다가 말았습니다.
곤충 중에 매미는 해충이더군요. 굼벵이서절 땅속 나무 뿌리의 진액을 빠아 먹어서 나무를 고사시키는 것이 그렇고, 도심의 메미가 지나치게 울어서 소음 이상의 소음이 되서 그렇다는군요. 그런 나쁜 의미의 매미 같은 분이 있다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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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3-09-08 1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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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성철용 선생님, 어렷을 적 고향의 매미는 아이들에게 곁을 주지 않았는데,
요즘은 한 나무에 서너 마리가 떼지어 붙어 있어 놀랐습니다. 씁쓸한 느낌도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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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3-09-13 1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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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과 감시에 대하여 생각해보니 갑자기 우울해집니다.
내가 매미를 관찰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그 매미(사이보그 매미?)가 나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선생님의 상상이 두렵게 받아들여지는 까닭이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세월이 갈수록 나만의 소중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에 슬픔마저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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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식 |
13-09-14 1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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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창틀에 붙어 있던 '드론 매미'가 길을 잘 못들어 '격추'되지 않았을까 걱정됩니다, 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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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3-09-14 2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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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한 저에 대한 정보는 구질구질한 것까지 이미 기지에 보냈을 터이니
이 일을 어쩝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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