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닦으며

최원현

nulsaem@hanmail.net

요즘 들어 신경 쓰이는 것 중 또 하나가 치아(齒牙)다. 이 또한 나이가 들어가는 자연현상이겠지만 삶속에서 가장 예민하게 작용하는 것 중 하나여서일 게다. 그래서 큰맘을 먹고 장만한 게 있다. 전동칫솔이라는 것인데 배터리의 힘으로 칫솔질이 되는 자동 칫솔이다.

내 이(齒)는 튼튼한 편이 못 된다기보단 몇 번의 수난을 겪었다. 비교적 고른 이를 가지고 있던 내 이가 첫 수난을 당한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였다. 그러니까 35년쯤 전일 게다.

저녁 해으름께에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날이 너무 어두워진 것 같아 그만 쳐야지 하고 라켓을 내려놓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으로 셔틀콕이 날아들었다.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라켓을 올리며 그걸 받아냈다. 그런데 ‘톡’ 하는 아주 미묘한 소음이 난 것 같았는데 이에 통증이 왔다. 부자연스럽게 무방비 상태로 중간쯤을 잡고 있던 라켓이 위로 쳐올려지는 순간 라켓 손잡이 부분의 끝이 하필 앞니를 살짝 건드렸나보다.

이는 보기 좋게 반쪽만 남기고 떨어져 나가버렸다. 금방 신경이 노출되어서인지 시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당장은 어찌 해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무식하게도 아픈 것을 참으면서 시간이 가면 괜찮겠지 했는데 남아있는 이가 까맣게 변해갔다.

가까운 치과엘 들렀다. 신경이 밖으로 노출되어 있고 이가 죽어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빼야 된다고 했다. 그래서 뺄 이라면 빨리 빼버리자고 바로 빼버렸다. 그런데 그때부터 문제였다.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말도 새나왔다. 참으로 난감했다.

그때 마침 처형이 대학병원 치과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함께 있던 교수가 개원을 한다 했다. 나는 개원기념으로 그곳에서 이를 했다. 빼버린 이 자리에 새 이를 만들어 끼우는데 그걸 위해 양쪽의 멀쩡한 두 이를 송곳처럼 갈아내고 만든 이를 걸쳤다.

두 번째의 수난은 어금니에 왔는데 무언가를 씹다가 자지러지게 놀랐다. 갑자기 이가 아파왔다. 언제부터 그랬었는지 모르지만 이에 금이 가 있었는데 갈라진 틈새의 신경을 음식물이 건드렸나보다. 이로 인해 고생을 어지간히 하다가 결국 그 이도 빼내고 그 자리에 두 개의 이를 임플랜트(implant)로 심었다. 엄청난 돈을 들여 이를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특히 질긴 것은 가장 큰 난적이다.

가을이면 잇몸이 시려 견딜 수가 없다. 죽염으로도 양치질을 해보고 약도 먹어보지만 매년 연례행사가 걸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엔 눈에 보이는 먹음직한 것도 일단 우선멈춤을 한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 내지 시도를 한다.

그런 내게 유혹의 물건이 보였다. 힘들여 칫솔질을 하지 않아도 되고 손 칫솔질로 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되며 짧은 시간에 몇 배의 효과적 이 닦기로 이를 보호할 수 있다 했다. 그런데 너무 고가(高價)다.

이 닦기에 이만 한 돈을 투자해야 하나 하는 의아심도 생기는데 그보다 소모품인 갈아 끼우는 칫솔가격이 또한 만만치 않다. 그게 더 마음을 주저하게 만든다. 헌데 이를 보호할 수 있다면 이 정도 투자는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과 50% 할인 구매권이 있다는 것이 계속 구매 쪽으로 마음을 당겨간다. 그렇게 장만한 전동칫솔이다.

처음 몇 번은 더 불편하고 오히려 이가 뻐근하기까지 했는데 몇 번 써보니 확실히 좋다. 더구나 시간까지 체크해 주는데다 힘이 너무 주어지거나 하면 찡그리는 인상이 나타나 얼른 수정을 하게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전동칫솔을 쓰다 보니 사람이 어디까지 편리함을 추구하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다간 밥을 떠 넣어주는 로봇으로 식사를 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사람이란 앉으면 기대고 싶고, 기대면 눕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그게 어디 전동칫솔 만이랴. 머리를 써서 지혜롭게 산다는 것이 결국은 사람의 동선(動線)을 줄이는 것이고 움직이지 않고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랴.

그래놓고는 운동부족이라며 돈을 내고 운동을 한다. 가장 좋은 운동이 ‘걷기’라는데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체면상 싫고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을 하려 한다. 하지만 돈이 많이 든다고 좋은 운동이랴. 가장 효과적인 건강법은 자기에게 맞고 쉽게 할 수 있고 돈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건강은 살 수 없다지 않던가. 사람의 수명이 늘어나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이(齒)라고 한다. 50년 정도 사용하던 이를 수명이 늘어나 80년 90년씩 배를 더 사용해야 하니 문제가 안 될 수 없다. 거기다 식생활의 변화로 산성 음식을 많이 먹게 되어 이가 쉬 약해지고 파괴되니 더욱 문제다.

나 또한 이에 제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장만한 전동칫솔이기도 하다. 그러니 비싼 돈 들여 산만큼 열심히 잘 사용하여 건강한 이를 유지한다면 될 일이다. 이가 아파 고생을 해 보거나 이가 좋지 못해 먹을 것, 먹고 싶은 것 제대로 먹지 못한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의 고마움, 좋은 이를 가진 행복을 미처 알지 못 하리라. 그러고 보니 보통 10년이 수명이라고 들었는데 35년이나 아무 문제없이 쓰고 있는 두 개의 이를 해 준 그 때의 치과의사가 한없이 고맙다. 해서 치과의사협회에 알아본 적도 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이름이 없었다.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으니 그 사이 돌아가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전동칫솔로 왼쪽부터 칫솔질을 해본다. 칫솔질을 한다기보다 이에 칫솔을 잘 갖다 대면 된다. 잘 닦아야 한다. 그래서 이의 건강이 유지되어야 한다. 네가 잘 도와 줘야겠다. 칫솔을 갖다 대며 칫솔에게 말을 건넨다. 저도 이런 내 마음을 알까. 결국 이제 우리의 삶도 내 힘으로보다는 기계건 사람이건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있다. 전동칫솔이 열심히 내 이를 구석구석까지 닦아주고 있는 이 아침 나는 착한 아가가 되어 그에게 이를 맡기고 있다. 거울에 붙여놓은 안내기에서 스마일 표정이 아주 기분 좋게 활짝 웃고 있다. 아주 잘 하고 있다는 그만의 표현이다.

최원현 essay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