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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그 어울림의 향기                       

 유난히도 춥고 긴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이 느껴지니 식탁에서도 무언가 상큼한 것이 먹고 싶다. 김장김치 맛이 변하지 않았어도 햇김치가 그립고, 햇나물 생각이 난다. 봄에는 뭐니 뭐니 해도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봄나물이 최고의 입맛을 돋운다. 

 오늘은 무슨  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차릴까 하면서 시장을 찾았다. 시장은 저녁준비를 위해 나온 주부들이 많았는데, 난전의 나물 앞에서 기웃거리는 걸 보니 나처럼 봄나물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봄 향기가 느껴지는 싱그러운 나물들은 소쿠리에 수북수북 얹혀져 있어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냉이와 달래 ․ 봄동 ․ 쏙세 등보기만 해도 봄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좌판을 벌여놓은 할머니는 냉이를 손수 캐오셨다며 어디서 이런 냉이 사지도 못한다고 자랑이 한창이시다. 가만히 보니 냉이 뿌리가 곧고 하얀 것이 오동통하게 살이 올라 있어 노지에서 캐온 것이 틀림없었다. 겨우내 언 땅속에서 추위를 견디며 자라난 냉이는 구황작물(救荒作物)로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성이 없다. 단백질 함유량도 많고, 철분, 비타민 A가 많아 춘곤증 예방도 된다고 하니 제철에 자주 해먹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달래, 냉이 한소쿠리와 돌미나리를 사고 쪽파와 여린 쑥도 샀다. 그 옆에는 쏙세(씀바귀 과에 속하는 뿌리채소)가 미삼뿌리처럼 통통해서 또 지갑을 열었다. 어느새 시장바구니에는 낚은 봄이 가득했다.

 사온 나물들을 다듬어 달래는 고춧가루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버무렸다. 냉이와 미나리는 팔팔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서 갖은 양념을 한 고추장에 식초와 매실 청을 넣고 심심하게 무쳤다. 무치면서 맛을 보니 냉이 향과 미나리 향이 입안 가득해 얼른 밥이 먹고 싶어진다. 쏙세도 생것으로 묵은 김치를 잘게 썰어 넣고 같이 무쳤더니 쌉싸래한 맛이 쓰기는 해도 뒷맛이 달다. 씀바귀가 좋은 나물과 김치가 된다는 걸 시댁 어른들을 만나고 나서 알았듯이, 쏙세도 결혼 후에 배운 음식인데 참 맛있다. 이런 나물들은 땅속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난 것이라 몸에도 좋고 밥에 비벼먹어도 괜찮다.

 쑥은 멸치, 다시마 국물에 된장을 풀어 팔팔 끓을 때 넣었더니 파란 쑥 향기가 새어나와 집안에 봄냄새가 가득했다. 쪽파는 데쳐서 돌돌 말아 접시에 예쁘게 돌려 담고(쪽파로 오이를 돌돌 말아도 상큼하다) 초고추장을 곁들였더니 보기만 해도 그럴싸했다. 여기에 햇김치와 가족 수대로 조기를 구워 놓으니 이만하면 진수성찬에 봄이 한 상 가득했다. 밥상이 파릇파릇 윤기 도는 나물들을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어린 시절 봄이면 언니와 동생들과 같이 묵정밭으로 달래, 냉이를 캐러 다녔었다. 봄바람이 하도 추워 손등이 다 터지던 시절,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냉이가 싹 틔운 걸 보면 탄성이 절로 나왔다. 냉이는 북데기가 잘 달라붙어서 다듬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봄의 미각을 찾는 데는 그만이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에 달래, 냉이, 바지락을 함께 넣으면 조개 맛과 달래 냉이 향이 살아있어 정말 맛이 있다. 횡성에 계신 작은 아버님이 매년 두릅 한 상자를 보내주시는데 살짝 데쳐서 먹는 맛도 일품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나물은 선조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잘 구별해 놓은 지혜에 의해 전해왔다. 예전에 겨울 채소를 접하기 어려웠을 때는 가을에 말려두었던 나물을 정월 대보름에나 먹는 풍습이 있었다. 요즘은 재배 기술이 발달해 아무 때나 나물을 먹을 수 있지만, 봄이 아니면 그 맛의 진가를 보기 어려운 것이 봄에 파랗게 새싹을 틔우거나 줄기가 올라오는 나물일 것이다.

 봄나물 종류는 냉이 ․ 달래 ․ 쑥 ․ 돌미나리 ․ 돌나물 ․ 원추리 ․ 취나물 ․ 참나물 ․ 참순 나무순 ․ 두릅 ․ 시금치 ․ 산나물 등이 있는데, 특히 정신을 맑게 해주고 비타민 c와 칼슘, 철분, 식이섬유가 많아 빈혈이나 동맥경화, 노화방지, 각종 성인병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생것으로 갖은 양념에 버무려 먹기도 하고,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조물조물 무쳐내기도 하는데,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제철 음식이 보약이듯 몸의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봄나물은 놀라운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되기도 한다. 

 평소 나는 그런대로 반찬 가짓수를 많이 준비하는 편이다. 이런 나를 보고 간혹 집에 오는 손님들은 요리를 배워서 그렇다고 하지만, 요리 배울 때는 조리하는 과정, 규격화된 모양과 맛, 크기, 색깔이 좌우하는 것으로 배웠기 때문에 집에서 만드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면에 기본적인 이론은 어머니에게 배운 것도 있고 책에서 얻은 내용도 있지만, 가정주부로 살아온 37년의 경험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응용하다 보면 요령도 생기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올라 나만이 뚝딱하는 요리도 더러 있다. 찬거리를 살 때면 으레 “어떻게 만드는 것이 맛있나요?” 하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또 다른 비법이 있으면 배우기 위해서이다.

 살다 보면 쓴맛,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까지 느끼며 살아간다. 여러 가지 맛을 지니고 있는 봄나물도 결국은 어울림의 향기이다. 갖은 양념과 어우러져야 감칠맛이 있고, 상큼한 맛으로 입맛을 사로잡는 것이다. 나도 봄나물처럼 어울림의 향기를 지닌 삶을 살고 싶다.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으로 깊은 맛을 내는 사람이고 싶다.